[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들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넘어 반도체용 유리 기판 사업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유리 기판을 다뤄온 경험이 많은 만큼 이를 신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포석에서다. 이들이 겨냥하는 분야는 디스플레이 일부 공정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유리 인터포저 분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유리 기판 사업을 통해 포화 상태인 디스플레이 산업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게다가 BOE의 경우 지난해 이미 유리 코어 기판 생산 설비를 발주하면서 한 발 앞서가는 만큼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이 반도체용 유리 기판과 관련된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유리 기판을 다루다 보니 관련 기술을 전반적으로 다 안다고 볼 수 있다"며 "충분히 역량이 있는 만큼 연구 개발을 통해 사업성을 타진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LG디스플레이도 예전부터 유리 기판과 관련한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삼성·LG그룹 계열사들이 유리 기판을 차세대 먹거리로 정조준하고 양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가운데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유리 코어 기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전기는 현재 세종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해 유리 코어 기판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이노텍 역시 지난해 유리 기판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국내 사업장에 시범 생산 라인을 구축해 여러 협력업체와 협업 중이다. 유리 코어 기판은 반도체 업체가 활용하는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의 코어 소재를 플라스틱에 가까운 유기소재에서 유리로 바꾼 기판이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눈여겨보는 분야는 유리 기판 중 또 다른 갈래인 유리 인터포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리 원장을 다뤄온 디스플레이 공정 경험을 바탕으로 유리 기판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유리 인터포저는 반도체 패키지에서 칩과 패키지를 이어주는 중간 연결 기판의 소재를 실리콘에서 유리로 대체한 형태다. 실리콘 인터포저는 웨이퍼 크기가 제한돼 있어 불량이 발생할 경우 전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사용 면적이 커질수록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구조다. 반면 유리는 패널 단위 대형화가 용이해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유리 인터포저 분야를 들여다보는 또 다른 이유로는 디스플레이 공정과의 유사성도 꼽힌다. 유리 인터포저 공정은 대면적 유리 원판을 다루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공정 조건 역시 디스플레이 공정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후 미세 홀을 뚫고 금속을 채운 뒤 배선을 형성하는 공정을 견뎌야 하는 만큼 사용되는 유리의 물성 요구 조건은 까다로운 편이다. 유리를 다뤄온 경험치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충분히 사업성을 검토할 만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리 기판의 경우 초박막유리(UTG)를 사용하는 만큼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유리 기판 사업에서 UTG의 강도나 내구성을 키우는 기술이 필요한 만큼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사업성을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 BOE도 지난해부터 '유리기반 패키징 기판 연구개발 테스트 라인 프로젝트'를 내걸고 유리 코어 기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제입찰정보망 차이나비딩에 따르면 BOE는 지난해 6월부터 자동광학검사(AOI), 레이저 변조 장비, 무전해 구리도금 등 반도체 유리 기판용 설비를 발주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8인치 유리 기판 파일럿 라인을 가동했으며,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과 중국 패널 업체들의 경쟁이 유리 기판으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패널 업체들이 유리 기판 사업을 검토하는 배경으로 산업 자체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꼽는다. 모바일, TV 패널을 넘어 전장, 로봇, 웨어러블 기기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미래 신사업을 선점하기 위해 유리 기판 분야를 두드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세 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스플레이 업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도 유리 기판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추세다.
앞선 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계에서 유리 기판 분야를 살펴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파인메탈마스크(FMM) 업체들 중에선 유리 기판 마스크를 개발하는 곳도 있다"며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등 콘퍼런스에서도 최근 들어 반도체 패키지용 유리 기판 관련 세션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 전체적으로도 유리 기판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리 원장을 잘 다루는 디스플레이 업체라고 하더라도 유리 기판의 핵심 공정을 모두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리 관통 전극(TGV) 기술의 경우 레이저 기반 미세 가공 업체들이 주력으로 하는 영역으로, 디스플레이 공정과는 기술적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디스플레이 공정이 유리 표면의 패터닝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라면, TGV는 유리 내부를 관통하는 3차원 미세 가공이 핵심이어서 기술적 접근 자체가 다르다. 이에 유리 기판에 진출하더라도 다른 업체들과 손잡을 필요는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리 기판 공급망 측면에서 보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유리를 제조하는 회사도 아니고 레이저 가공이나 에천트(Ehchant)를 활용한 식각·가공, 전기 도금 등을 하기엔 주력하는 기술의 결이 조금 다르다"며 "디스플레이 업체가 전반적인 기술에 대한 경험은 있지만 공급망 내에서 명확한 역할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업체의 역량은 증명된 만큼 충분히 (유리 기판 사업 진출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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