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양도웅 기자] 소위 말해 '기-승-전-철수'였다. 지난해 취재를 위해 한국씨티은행의 몇 년 치 사업보고서를 훑어보고, 직원 몇 명을 만나 은행 내부 분위기를 알게 되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었다. 당시 여러 편 작성한 기사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씨티은행이 철수라는 출구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속으론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들을 찾는 고객들이 점점 줄어드는 데 무관심했다. 2017년 국내 금융권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영업점 구조조정(134→44개)을 단행하며 디지털 은행으로의 전환을 천명했지만, 빈말에 불과했다. 그 사이 2%대를 간신히 유지하던 국내 예수금 시장 점유율은 2020년 말 1%대로 떨어졌고, 대출금 시장 점유율도 1.5%대로 주저앉았다. 딱히 반등의 기회를 모색하지도 않았다.
영업점 규모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지만, 직원 수는 3500명 안팎을 유지하며 반쪽짜리 구조조정에 만족했다. 은행을 떠난 건 대부분 콜센터 용역 직원들이었고, 그 빈 자리는 폐쇄한 영업점의 직원들이 채웠다. 상황이 이런데 신입 행원 공채는 딴나라 이야기였다. 조직은 급속히 늙어 갔고(시중은행 중 직원 평균 근속연수 1위), 세계 톱 클래스 은행의 임직원이라는 자부심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랬는지, 올해 2월 미국 씨티그룹 본사가 씨티은행의 소매금융(개인 여수신·WM·카드) 부문을 매각하겠다고 밝혔을 때 '놀라움'보다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당시 제인 프레이저 CEO는 "회사를 단순화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바꿔 말해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부문을 운영하기 위해 더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후 소매금융 부문을 통으로 매각하겠다던 씨티은행이 이달 초 분리 매각과 함께 단계적 철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4개월 전처럼 놀라지 않았다. 금융권 안팎에선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금융사가 네 곳 이상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지만, 그들 대부분은 씨티은행이 바라는 '일괄 인수'와 '고용 승계'엔 손사래 친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 인수합병(M&A)을 오랫동안 취재한 선배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 중 하나가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걸레론'이다. 박 전 회장은 과거 IMF 사태 이후 그룹의 구조조정을 이끌며 음료 사업과 을지로 사옥, OB맥주 등을 매각했다. 모두 그룹의 핵심 자산이었던 까닭에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박 전 회장은 "내게 걸레(부실자산)면 남에게도 걸레다"라는 논리로 설득했다.
이 같은 지론은 두산그룹의 '정신'으로 자리 잡았는지, 두산그룹은 최근 중화학공업 중심의 사업 구조를 신재생에너지 사업 중심의 구조로 재편하는 데 나름 성공적인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지난 14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도 공개적으로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 작업이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될 걸로 보인다"며 "두산중공업이 구조조정 계획 약속을 이행하는 한 저희는 계속 도와줄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씨티은행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곳들이 인수에 난색을 보인 부문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씨티은행이 오랫동안 방치한 영역들이다. 그들은 개인고객들이 더 이상 찾지 않으면 찾지 않는 대로, 내부 분위기가 무기력해지면 무기력해지는 대로 내버려 뒀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현상 유지는 곧 퇴보와 같다. 방치되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사업 부문을 적극 인수하겠다는 곳이 실제로 얼마나 될까. 내가 싫어하는 걸 남들이 좋아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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