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권일운 기자] 재벌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사업으로 골프장이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땅을 사고 코스를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다가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를 갉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탓이다. 수도권이 아닌 곳에 근사하게 지어놓은 회원제 골프장은 '회장님의 놀이터'라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었다.
그랬던 골프장이 인수·합병(M&A) 시장의 핫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매물이 나오는 족족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가격에 거래가 성사된다. 매수자의 면면은 다양하다. 중견을 넘어 대기업 반열에 끼려 하는 기업도 있고,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위시한 재무적 투자자도 있다. 심지어 골프장을 하나 인수하면 자산 규모가 몇 배는 늘어날 정도의 작은 기업도 매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골프장 M&A 시장의 활황은 재벌들에게 호재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두산이 클럽모우를 팔아 막대한 자구안 이행 재원을 마련한 것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총수 차원의 골프 사랑이 남다르다고 알려진 한화와 코오롱도 골프장을 내놓을 것이란 소문이 들린다.
골프장은 공급이 제한적인 성격의 자산이다. 인허가 문제로 인해 새 골프장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허허벌판이나 두메산골에 지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제값을 내고 찾아올 손님이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당연히 입지가 좋은 골프장으로 수요가 몰리는 구조다. 위치가 좀 괜찮다 하는 골프장이 매물로 나오면 순식간에 팔리는 것은 이런 이유다.
골프장 호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세력(?)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더없는 호재로 내세운다. 갈 곳도 없고, 놀 것도 없는 코로나 정국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는 레저 활동은 골프가 유일하다는 논리다. 그린피가 비싸져도 너무 비싸졌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리는 걸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높으신 분의 놀이터 장만이 아니라 사업 확장이라는 명목이라면 골프장을 인수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의사결정이 된 시대다.
최근의 골프장 M&A 시장은 부동산(정확히는 아파트) 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전국적인 보급률이 낮은 것은 아닌데, 수요가 몰리는 곳은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많고 거래가 될법한 물건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 매도자가 배짱을 튕기는 바람에 거래가 무산된 사례도 나타날 정도다.
요즘 부동산 시장에는 일종의 격언 같은것이 존재한다. "지금이 제일 싸요"라는 말이다. 부동산 카페 등지에 집을 살지 말지 묻는 글을 올리면 십중팔구 달리는 댓글이기도 하다. 골프장 M&A 행렬에 동참하는 매수자들 역시 비슷한 심정으로 매물을 찾는 듯 하다. 매물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홀당 **억원'으로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격이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지금 골프장을 사거나 파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는지는 10년 뒤면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일단 회원제 골프장을 마구잡이로 짓던 시절과는 달리 어느정도 사업성이 검증된 골프장들이 거래되는 시기라 매수자의 기둥뿌리를 뒤흔드는 일이 생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골프장 M&A의 성패를 가늠할 때에는 한 가지 변수를 더 고려해야 한다. 내가 산 물건의 값이 떨어지거나, 판 물건의 값이 크게 오르면 배가 아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이다. 지금 골프장 M&A 판에 뛰어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본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이 과연 10년 뒤쯤 "그때 사길 잘했다"라고 안도하는 쪽일지, "그때 팔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쪽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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