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긴급 안건 가능성 있어"··· 기업銀 "투명성·전문성 요구"
[이규창, 김현희, 양도웅 기자] KT&G의 1,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IBK기업은행이 3월 중 임기가 만료되는 KT&G 사외이사 3명 후임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된다.
기업은행은 앞서 지난 2018년 정기주총을 앞두고 투자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꿨다. 당시 백복인 사장의 연임에 반대하고, 사외이사 2인을 추가 선임할 것을 주주제안했지만 표 대결에서 외국인 투자자에 밀려 백 대표이사의 연임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와 관련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청와대가 백 대표 교체 건을 지시, 기업은행이 이를 따르려 했다고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언제든지 긴급안건으로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을, 기업은행은 2대 주주로서 사외이사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KT&G의 사외이사 6명 중 송업교, 이준규, 노준화 이사가 이달 17일 임기를 마친다. 이 가운데 노준화 이사는 지난 2017년 선임돼 연임 가능성이 있으나 나란히 2014년에 사외이사 자리에 오른 송업교, 이준규 이사는 교체된다.
올해부터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사외이사가 한 상장사에 6년, 계열사 포함 9년 이상 재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KT&G는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교체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그러나 KT&G 지분 11.21%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있는 국민연금과 6.93%의 지분을 가진 기업은행이 사외이사 교체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KT&G는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인수한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인 트리삭티와 관련해 분식회계 혐의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았다. 금감원이 지난달 KT&G에 검찰 통보와 임원 해임권고 등의 내용을 담은 조치사전통지서를 보낸 것.
KT&G는 트리삭티 경영권(51%)을 보유한 싱가포르 소재 특수목적회사(SPC) 렌졸룩 지분 100%를 897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장부가액인 180억원의 5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후에도 수년간에 걸쳐 트리삭티 잔여 지분 인수 등에 돈을 쏟아 부었으나 트리삭티는 2016년까지 계속 순순실을 냈다. 게다가 렌졸룩을 통해 트리삭티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었지만 구주주와의 계약에 따라 실질적인 지배력이 없었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금감원은 KT&G가 이런 상황에서도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 고의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KT&G는 공시를 통해 “보도된 감리 결과는 최종 결과가 아니다”며 “앞으로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회계기준 적절성에 대해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내부 고발자의 제보를 인용해 2015년 10월 백복인 사장 부임 이후 KT&G가 미리 내정한 사외이사를 헤드헌터사로부터 추천받는 형식으로 선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KT&G 사외이사 교체를 앞두고 국민연금과 기업은행의 입장이 중요해졌다. 특히 기업은행은 2018년 백복인 사장 연임을 반대하고 사외이사 증원을 요구했으나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중립’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기업은행이 힘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트리삭티 관련해 380억원을 투입했던 국민연금이나 백 사장 연임에 반대했던 기업은행이 KT&G에 대해 공세로 전환할 수 있다. 여전히 KT&G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압력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금감원 감리 결과로 과거보다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일단 국민연금은 KT&G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개최하는데 한진칼 관련 안건만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KT&G 관련 논의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여지를 남겼다.
기업은행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전문성이 있고 도덕성에 흠결이 없는 인물이 사외이사로 추천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소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상황에 따라 2018년처럼 KT&G에 노골적인 개입을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KT&G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 관련 일부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현재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진행하는 내용은 비공개여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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