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증권사의 '캡티브 영업' 관행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현장검사에 착수해 기업금융부서를 대상으로 회사채 관련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그간 증권사들은 계열사나 타 부서를 동원해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주관 업무를 따내는 '캡티브 영업'을 관행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유통금리를 왜곡시키고, 투자자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다. 이상 거래가 적발된 발행사와 주관사를 추적해 유통 거래 내역을 분석하고 문제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짚어본다.
[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SK그룹은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대표적인 '빅 이슈어(Big Issuer)'로 손꼽힌다. 올해 1분기에만 2조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해 시장에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다. 이 딜을 대거 수임한 증권사들은 DCM(부채자본시장) 리그테이블 상위권에 안착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가 계열사 등 우호 기관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채운 이른바 '캡티브 영업'에 나섰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발행된 SK 계열사 채권 가운데 상당수가 발행 직후, 같은 분기 내 유통시장에서 액면가(1만원) 이하로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예측 단계에서 인위적인 모집을 마련하고 채권발행 직후에는 해당 물량을 시장에서 단기 매도하는 방식이 반복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리 왜곡과 채권 시장 신뢰 훼손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 SK가스·SK지오센트릭·SK인천석유화학·SK디스커버리·SK엔무브 등 SK그룹 계열사 5곳이 발행한 채권들은 대부분 발행 직후 유통시장에서 액면가를 밑도는 가격에 거래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채권들은 표면적으로는 모두 A+ 이상의 신용등급을 보유한 우량물로 평가된다.
채권운용사 한 관계자는 "유통시장에서 BBB급 이하 신용도를 가진 물량을 제외하고, 우량 채권이 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액면가 이하로 거래되는 건 '이상 거래'로 여긴다"며 "캡티브 영업 후 수수료를 녹여 다시 시장에 내놓는 인위적 거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특히 SK인천석유화학의 26-1회차 채권은 이번 캡티브 의혹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사례다. 발행 금리는 3.368%였지만 이후 유통시장에서는 최고 3.747% 수준까지 수익률이 오르며 거래됐기 때문이다. 약 38bp(1bp=0.01%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익률 급등은 '헐값 매도'가 발생했다는 방증이다. 발행 당시 1만원이었던 채권가격은 9961원까지 떨어져 거래됐다.
해당 채권의 대표주관사는 SK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등이었다. 이 중 SK증권은 SK그룹과의 지분 관계는 단절됐지만 과거 관계에 기반해 인수 물량을 배정받고 있다. 이에 SK증권이 캡티브 수요를 별도로 동원할 필요나 여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SK증권사를 제외한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은 계열사나 내부 운용부서를 동원해 수요예측에 참여한 뒤, 확보한 물량을 유통시장에서 처분한 회사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해당 채권이 발행 직후 발행 시 채권가격(액면가)인 1만원을 밑도는 가격에 거래됐다는 점에서, 캡티브 영업에 기반해 시장금리를 왜곡한 정황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의 경우 이번 1분기 액면가 언더 거래가 발생한 SK 계열사 채권의 주관사단에 1~2건씩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모두 일반 회사채 리그테이블 기준 1~4위권에 해당하며, 수주 경쟁이 가장 치열한 하우스들이다. 시장에서는 이들이 실적 확보를 위해 캡티브 영업을 동원하는 등 무리한 수요를 모았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부터 채권 유통시장 금리 왜곡을 낳은 캡티브 영업 관행에 대해 실태 점검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검사가 완료됐고 신한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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