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자사주를 주주환원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공시 의무 제도가 지난해 말 도입됐지만 실제로 자사주 소각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상장 보험사는 삼성화재가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해인 만큼 실질적인 주주환원 조치로 이어지기까진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일 국내 상장 보험사 11곳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삼성생명,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코리안리 등 7곳은 자사주를 5% 이상 보유하고 있어 공시 의무 대상에 해당됐다.
지난해 말 도입된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총수의 5% 이상인 상장사는 자사주 보유 현황과 보유 목적, 향후 처리 계획(소각, 추가 취득 등)을 포함한 보고서를 작성해 공시해야 한다.
정부는 자사주가 원래 목적(주주환원)과 달리 경영권 방어 등에 사용되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손봤다. 개정안에는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 제한 등 내용도 담겼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이익을 주주에게 현금으로 돌려준다는 점에서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인식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회사가 매입한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오용되는 등 문제점이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공시 대상 보험사 가운데 자사주 처리계획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곳은 삼성화재 1곳뿐이었다. 삼성화재는 올해 1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공시에서도 보유 중인 자사주를 순차적으로 소각하고 2028년까지 자사주 비중을 5%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보통주 136만3682주를 소각했고 자사주 비중은 기존 15.9%에서 13.4%로 낮아졌다.
다른 보험사들은 우선 자사주를 보유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해상은 "경영 환경, 주주환원 정책 등을 고려해 자사주 처분 또는 소각을 검토할 수 있다"고 공시했지만 현재까지 소각한 이력은 없다. 현대해상의 자사주 보유 비중은 12.3%다.
DB손보는 "자사주를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매입 후 보유 중이며 향후에도 주주가치 제고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시장에 처분하지 않고 지속 보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유한 자사주를 처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으면 발행주식 수에는 변동이 없어 실질적인 주주환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자사주 매입을 통해 유통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은 자사주를 전략적 목적의 자산으로 보유 중이다. 자사주는 상장회사의 유동성 자산 역할도 한다. 처분하면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지분 교환 수단 등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삼성생명은 "사업제휴, 글로벌사업 확장 등 본업 경쟁력 강화 및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생명은 "급격한 금리 변동에 따라 지급여력비율이 급락하는 위기 국면에서는 보유 자사주를 전략적으로 처분해 건전성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향후 보험사의 자사주 활용 전략이 점차 구체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반면 공시 의무만으로 자사주의 오남용을 차단하고 주주환원 효과를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투자 보고서에서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취득 후 특정 기한 내 처분을 의무화하거나 처분의 상대방에 따라 처분 가능 물량을 제한하는 등 행위 자체를 규율하는 게 (제도 개선 목적 달성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해외사례의 경우 독일은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자본의 1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사주가 자본금의 10%를 초과하면 초과 부분을 취득한 때로부터 3년 이내에 소각 또는 매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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