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진단'연내 IPO' 한화에너지, 지배구조 개편 시험대
과거 대기업들은 유망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를 거듭했지만 시장의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그룹 계열사 상장 이슈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중복 상장이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고질적 병폐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또 중복 상장 논란은 과거와 달리 '쪼개기 상장'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물적분할이 아니라 인수합병(M&A) 기업이나 신설 법인을 상장하는 사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중복 상장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가이드라인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기업들의 중복 상장 여부를 사업적 독립성, 경영상 독립성, 모회사 주주보호라는 요소를 기준으로 진단해 본다.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한화에너지가 연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자본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시에 '중복상장' 논란과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겹치면서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상장 추진은 공식화했지만, 향후 행보에는 정치권의 상법 개정안과 투자자들의 합병 우려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복상장의 이슈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다.
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화에너지는 연내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예비심사 청구를 준비 중이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삼형제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회사로 꼽힌다. 한화에너지는 상장 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대신증권을 선정했다.
한화에너지의 IPO는 한화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일부로 해석됐다. 특히 상장 후 기업가치를 부풀린 뒤, 지주사와의 합병을 통해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게 점쳐졌다. 이 때문에 한화에너지가 한화와 합병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퍼졌다. 이는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와도 닮은꼴이다.
한화그룹은 공식적으로 "합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의 승인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실제 합병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중점심사로, 한화그룹의 승계 과정에 대한 당국의 관심도 매우 높아진 상태다.
최근 유상증자를 발표하기 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한화임팩트와 한화오션 지분을 매입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를 오너일가를 지원하기 위한 현금 투입으로 해석했다. 자금 수요가 명확한 상황에서 이 같은 지원이 적절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도 이와 관련된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이 탓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존 계획을 수정했다. 약 1조3000원 규모의 증자는 한화에너지 등을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유증으로 진행하면서, 한화에너지에 지원한 자금을 다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돌려놓게 했다.
합병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한화에너지 IPO 자체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임팩트, 한화오션 지분 매각을 통해 얻은 현금이 없어져, 지배력 강화에 필요한 현금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한화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 지배력이 더욱 강화된다. 또 오너일가의 구주매출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화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세 형제가 각기 다른 비율로 한화에너지 지분을 매각하거나 배분하면, 이후 각자의 주력 사업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도 재정립될 수 있다. 현재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조선·에너지 사업부문을, 김동원 사장은 금융 사업부문,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 및 반도체 장비 사업부문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현재 한화에너지는 ㈜한화의 지분 22.2%를 보유 중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9.7%였던 지분율은 한화오션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약 9000억원의 현금을 바탕으로 대폭 확대됐다. 향후 IPO 공모자금까지 더해지면 ㈜한화에 대한 지배력은 더 커질 수 있다.
한편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장이나 계열사 지원 등의 의사결정에 대해 이사회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한화에너지가 향후 지주사로 전환될 경우 기존 지주사격 회사였던 ㈜한화의 입지가 애매해질 수 있다. 이 경우 ㈜한화 소액주주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주주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복상장은 이러한 점에서 기존 상장사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요인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반면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한화의 주가가 낮을수록 향후 합병 시 승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장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조 개편이 상법 개정 전 지배력 정비를 서두르기 위한 행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한화에너지는 최근 몇 년간 수익성 하락과 부채비율 상승 등으로 IPO 적기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그럼에도 향후 법적 리스크에 대비해 옥상옥 구조를 조기에 완성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