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규연 기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어떤 경우에든 흔히 쓰인다. 어떤 일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긴 뒤에야 해결하려는 상황은 어느 분야에서든 일어나기 쉬워서다. 사전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증권업계 화두로 떠오른 전산장애 문제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에 걸맞은 사례다. 대체거래소(ATS) 등장 및 온라인 주식거래 증가 등으로 전산장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도 증권사의 사전 예방이 미흡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주식거래 시스템이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및 HTS(홈트레이딩시스템) 중심으로 바뀌면서 전산장애도 꾸준히 늘어났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MTS와 HTS에서 발생한 서비스 장애 건수는 2020년 60건에서 2024년 94건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올해는 특히 증권사 전산장애가 이슈에 많이 올랐다. 중대형 증권사를 가리지 않고 전산장애가 계속 일어난 데다 몇몇 증권사에서는 오류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 1~5월 동안 벌어진 주요 증권사 전산장애만 10여 건에 이른다.
세부 사례를 살펴보면 앞서 카카오페이증권에서 2월26일 오후 6~11시 동안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인 HMR(하이드마마리타임홀딩스)) 거래가 불가능해지는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연이어 3월4일에는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에서 전산장애 오류가 각각 생겼다.
3월에는 5일 한국투자증권, 11일과 19일에는 토스증권, 28일과 31일에는 신한투자증권에서 전산장애가 나타났다. 4월에는 키움증권 MTS와 HTS에서 3~4일 이틀 연속으로 매수·매도 체결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 미래에셋증권에서도 같은 달 18일 매수·매도 체결 지연 오류가 발생했다.
이달 들어서는 메리츠증권에서 6일 밤에 미국 주식 매수·매도가 이뤄지지 않는 전산장애가 터졌다. 그 뒤 토스증권 MTS에서 9일 오후에 접속 제한 오류가 생겼고, 12일 밤에도 MTS 일부 고객이 접속 오류를 경험했다.
증권사들이 전산장애의 구체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키움증권의 경우 4월 전산장애의 이유로 '주문 폭주로 병목 현상이 나타난 데 따른 시스템 과부하'를 제시했지만 이것 역시 근본적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 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사들이 지난해 벌었던 이익 증가율과 비교하면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 관련 투자비용은 상대적으로 적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기자본 기준 상위 증권사 20곳은 지난해 전산운용비로 전체 7615억원을 썼다. 2023년과 비교하면 13.2%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이 증권사들의 별도기준 순이익은 전체 6조2739억원으로 24.1% 증가했다.
전산운용비는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뿐 아니라 MTS의 UI(유저인터페이스) 개편이나 기능 추가 등에도 쓰인다. 이를 고려하면 증권사들이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의 관리 및 사고 이후 시스템 정비 등에 투자한 비용 증가율은 전체 전산운용비 증가율보다 낮을 수도 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부진 등의 악재가 겹치자 온라인 주식거래로 대표되는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익을 더욱 키우는데 힘썼다. IB(기업금융) 중심 증권사들이 지난해 주식위탁매매 사업을 잇달아 강화한 전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증권사 전산장애가 잇달아 발생한 것은 증권사들이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 관리에 비교적 미흡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개인투자자라는 '소'를 유치하기 전에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잦은 전산장애라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증권사들은 앞으로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 관리를 제대로 진행해야 한다. 소를 이미 잃었더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소가 안심하고 다시 외양간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상위 증권사 20곳의 올해 1분기 전산운용비는 전체 201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7% 늘어났다. 이 전산운용비 증가율이 올해를 통틀어 전년대비 얼마나 높아질지도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모쪼록 증권사들이 올해는 '외양간'에 더욱 신경 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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