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그룹이 '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그룹사 출범을 선포한 지 올해로 11년차를 맞았다. 해성그룹은 '현금왕'이라 불렸던 故 단사천 명예회장이 1937년 창립한 일만상회에서 시작해 어느덧 총 자산 규모가 2조원이 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해성산업을 지주사로 두고 한국제지·한국팩키지·계양전기·해성디에스를 사업회사로 거느리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며 또 한번 변화의 전기를 다졌다. 딜사이트는 앞으로 그룹 성장을 이끌어나갈 핵심 계열사들의 현 주소를 점검해보며 해성그룹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가기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해성그룹 제지 부문 계열사 한국팩키지 현금성 자산이 1년 새 87% 급감하는 등 유동성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규설비 투자 및 운영자금 조달 목적으로 발행한 120억원 규모 사채를 한꺼번에 상환하면서 자금 부담이 가중된 탓이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한국팩키지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7%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서는 50% 감소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는 통상 현금을 비롯해 3개월 이내 현금화할 수 있는 투자 자산이 포함된다.
현금 유동성 위기는 부채 상환에서 비롯됐다. 한국팩키지는 올 1분기 사채 상환을 명목으로 135억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이 회사가 벌어들인 현금을 훨씬 상회한다. 1분기 한국팩키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7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한국팩키지가 사업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했던 사채를 전액 상환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한국팩키지는 2020년 하베스트 제2호 사모투자합자회사를 대상으로 전환사채(CB) 60억원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60억원을 발행했다. 자금 용도는 신규설비 투자금(80억원)과 운영자금(40억원) 조달이다. 사채는 당초 오는 11월 만기될 예정이었지만 하베스트 측이 조기상환 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상환 시점이 앞당겨지게 됐다.
문제는 한국팩키지 현금 여력이 남은 빚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올 3월 말 기준 한국팩키지가 1년 이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만 684억원에 달한다. 유동성장기차입을 더한 총 차입금은 686억원에 이른다.
한국팩키지는 현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보니 리파이낸싱에 의지하며 자금을 굴리는 실정이다. 올 1분기 기준 한국팩키지 재무활동현금흐름 항목 중 단기차입금 증가액과 상환액은 각각 480억원, 409억원을 기록했다. 단기차입금을 차환하고 남은 금액은 한국팩키지가 영업활동으로 확보한 돈(순현금), 기존 보유 현금 자산 등과 함께 사채 상환에 쓰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팩키지 현금 유동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자 지출 역시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한국팩키지는 1분기에만 이자 지급 명목으로 8억원을 지출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팩키지가 거둬들인 순이익의 7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팩키지 현금곳간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축소됐다. 2024년 말 한국팩키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1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7% 줄었다. 1000억원이 넘는 단기차입을 차환으로 메웠지만 여전히 재무활동현금흐름(-68억원)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자금 지출이 이어진 여파다.
한국팩키지 현금 유동성은 4년 전에 비하면 7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양상이다. 2021년만 해도 한국팩키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2억원에 달했다. 당시 단기금융상품 회수 및 원창포장공업과의 사업결합에 따른 현금 유입으로 곳간이 채워졌다. 이후 2022년과 2023년 30억원 중반선을 유지하던 현금성 자산은 2024년 10억대로 떨어진 뒤 올 들어 최저점을 찍은 상태다.
특히 한국팩키지 재무건전성이 해성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팩키지 유동성 위기가 심해질 경우 모회사이자 그룹 지주사인 해성산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 1분기 말 해성산업이 보유한 연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127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팩키지를 지원할 재정적 여력은 갖추고 있지만 현금 자산 자체는 1년 전보다 48% 줄었다.
한국팩키지는 현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만큼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팩키지 관계자는 "지난 2월 자체 자금과 차입금을 일부 투입해 사채 상환을 진행했다"며 "올 1분기 현금성 자산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는데, 2분기 들어 거래대금 회수가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외부 차입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팩키지는 해성그룹 계열사로 지주사 해성산업이 지분 51.35%를 보유하고 있다. 1979년 한국제지 카톤팩 사업부에서 출범해 1993년 한국제지로부터 분사한 뒤 1999년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이후 2021년 12월 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골판지 제조기업 원창포장공업를 흡수합병해 업무영역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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