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상균 IB부장] 오는 6월3일 대선을 앞둔 벤처캐피탈(VC) 업계의 심경은 복잡 미묘하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눈에 띄지 않기에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덜하긴 하지만 이번 대선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현 정권(탄핵으로 물러난 정권)이 물러나고 그 다음으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수장이 바뀐다는 점에서 분명 바닥은 칠 것이라는 희망이 실려 있다.
지난 3년여간 VC업계는 그야말로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현 정권은 VC업계를 비롯, 벤처와 스타트업계를 "이전 정권의 부역자"라고 치부했다는 말이 여러 채널을 통해 들려왔을 정도다. '설마 아니겠지'하는 생각에 몇 차례 추가 확인을 해봤지만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 벤처투자 정책도 이전 정권과 비교해 급변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 마중물 역할을 하는 한국벤처투자 등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의 출자 예산이 급감했다. 시장의 큰 손인 은행들도 몸을 사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는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외교부 출신 관료가 임명됐다. 경험이 일천한 중기부 장관은 업계의 니즈(needs)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임기 내내 "해외 진출"만 외치다가 끝났다. 국내 VC를 만나기보다 해외 출장이 더 잦았다.
모태펀드 출자를 총괄하는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의 행보도 의문투성이었다. 유웅환 전 대표가 2023년 11월 자진 사임한 이후 1년 반이 넘도록 신상한 부대표의 대행체제가 이어졌다. 신 부대표는 과거 블랙리스트 논란에 전문성도 결여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중기부는 새로운 대표 선임에 소극적이었다.
그렇다고 신 부대표가 업계와의 소통에 적극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VC들이 "IMF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도 신 부대표는 업계는 물론, 언론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임정욱 중기부 창업벤처혁신 실장의 발언은 기나긴 겨울이 이제는 끝나가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이날 임 실장은 벤처캐피탈 사장단 연찬회에서 "공식 발표 전이지만 1분기 투자와 펀드 결성은 상당히 많이 늘었다"며 "좋은 기업이 많이 나오고 큰 투자 소식이 있는 만큼 새 정부에서도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VC 대표들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현 정권에 비해 벤처 육성책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했다고 한다.
지난 정권은 벤처투자에 대한 철학 자체가 부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 정권의 부역자"라는 인식이 살짝 옅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확 키우겠다는 생각은 끝까지 없었다. 업계의 문외한을 고위직에 앉혀놓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들조차도 비선권력의 라인을 타고 내려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이들은 본업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가졌다.
비선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정책자금 성격이 강한 LP(유한책임투자자)는 갑자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콘텐츠 사업에 수천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3년여의 시간 동안 벤처투자 시장은 철저히 망가졌다.
2주 후에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벤처투자 시장의 정상화가 절실한 시기다. LP 풀의 다양화, 망가진 회수시장의 정상화, 코스닥 펀드의 조성 필요성 등 과제는 산적해있다. 다행인 점은 대부분 후보가 벤처투자 시장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나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