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SK시그넷'캐즘·저품질' 부추긴 SK시그넷 매각설

[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저품질 논란 속에 SK시그넷에 관한 매각설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 지원에 나선 SK그룹은 매각을 검토한 적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사업 경쟁력 강화라는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리밸런싱) 측면에서 이 기업은 꾸준히 매각 대상으로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시장 위축에 따른 업황 부진, 저품질 이슈로 SK시그넷은 지난해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SK일렉링크를 비롯해 그룹에 산재돼 있는 충전기 관련 사업의 중복 투자는 리밸런싱을 적극 추진하는 SK 경영 기조에서 볼 때 매각 쪽에 힘을 싣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SK시그넷의 지난해 매출은 838억원으로 2023년보다 65% 증가했다. 다만 영업적자도 2428억원으로 전년대비 63% 늘었다. 2022년 매출 1623억원, 영업이익 30억원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반등이 절실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실적 부진에는 대내외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 우선 전기차 시장 캐즘이다. 시장 성장의 속도가 더딘 만큼 SK시그넷도 영향권에 있다. 전기차 충전기 생산을 위한 공장 가동률은 2022년 88%에서 2023년 71%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32%까지 하락했다.
급속충전기 파워 모듈 품질 이슈도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반품충당부채가 손익 측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반품충당부채는 312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없던 부채가 한꺼번에 비용으로 반영됐다. AS를 위해 쌓아두는 판매보증 충당부채의 경우 2023년 말 87억원에서 지난해 말 193억원으로 증가했다. 회사의 지난해 기준 누적 결손금은 3750억원, 자본총계 -1028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이었다.
저조한 실적 이외에 SK의 충전기 사업 관련 중복 투자는 매각설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SK에는 SK네트웍스 종속기업 SK일렉링크와 SK이노베이션 E&S의 아이파킹 등이 있다. SK일렉링크는 전기차 충전사업자(CPO)이고 아이파킹은 전기차 주차 플랫폼 사업 등을 한다. SK가 인공지능(AI)·반도체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가운데 전기차(EV) 밸류체인 조정 가능성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거론돼왔다.
SK는 그동안 전기차 시장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꼽고 SK온(배터리)을 비롯해 SK넥실리스(동박), SKIET(분리막) 등 EV 밸류체인 확장을 위해 투자를 단행해왔다. SK시그넷의 경우 시장 확대에 따른 충전기 인프라 수요 증가를 염두하고 2021년 투자한 업체다. 지난달 유증까지 포함해 SK㈜는 SK시그넷에 4000억원 이상 투입했다. 이처럼 EV 밸류체인 확장에 나섰으나 캐즘 속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리밸런싱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넓게 보면 SK시그넷이 SK의 EV 밸류체인 확장 국면에서 들어온 계열사인 것은 맞다"면서도 "배터리 사업의 핵심 계열사인 SK온의 경우 배터리 제조사이지만 충전기를 만드는 SK시그넷과 직접적인 시너지를 내기 어려운 측면은 있다"고 언급했다.
지속되는 매각설에도 SK는 매각설을 일축했다. SK시그넷 살리기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달 모기업 SK㈜는 1500억원의 3자배정 유증에 참여하며 실탄을 지원했다. 우선 115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전기차 충전기 제조를 위한 원재료 매입, 전기차 충전기 사양 업그레이드, 품목 확대 등에 투자할 방침이다. 기존 제품 품질 개선을 위한 목적도 있다.
특히 350억원은 채무-자본 전환을 위한 재원으로 쓰였다. 충전기 해외판매권 계약을 맺고 있는 마루베니가 유증을 거쳐 주주로 참여했다. 회사는 마루베니의 해외 영업망을 활용해 닛산, 폭스바겐, 포드, BMW, 제너럴모터스(GM) 등 일본과 유럽, 미국 등의 메이저 완성차 업체 등에 충전기를 공급해왔다. SK시그넷이 300억원 이상의 반품부채를 미지급금으로 대체했고 이어 3자배정 유증을 통해 부채로 계상했던 미지급금이 자본으로 출자전환됐다. 마루베니는 채무를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돌려받은 셈이다.
SK㈜ 관계자는 "매각을 검토한 적 없다"고 말했다. SK시그넷 관계자는 "유증을 진행하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매각 가능성은 없다"며 "SK일렉링크는 CPO로 제조사인 SK시그넷과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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