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차떼고 포떼는 기업들
알짜 계열사·사업부 매각 사업재편…재도약이냐 기업가치 훼손이냐 기로
이 기사는 2025년 05월 15일 08시 3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진철 편집국장] 장기판에서 '차 떼고 포 뗀다'는 것은 강력하고 요긴한 무기인 두 말(기물)을 빼고서 게임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실력자라면 차·포가 없이도 낮은 수의 상대방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일 수 있지만 동등한 상대끼리 붙었다면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서 장기를 둬야 한다.


요즘 기업들 중에는 '차 떼고 포 뗀다'는 것처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짜 계열사나 사업부를 떼 매각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화학은 수처리 필터 사업에서 11년 만에 철수하기로 했다. 수처리 필터사업은 해수담수화, 산업용수 정제 등 안정적 수요가 기대되는 분야로 평가된다. LG화학의 해수담수화 RO멤브레인 시장점유율은 일본 도레이에 이어 글로벌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 산업 침체가 깊어지면서 전략적 사업재편을 선택한 것이다. LG화학은 수처리 필터 사업을 떼 매각한 대금을 배터리 소재와 특수 화학제품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SK그룹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의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SK실트론은 지난 2017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단 한번도 적자를 내 적이 없는 알짜 회사다. SK그룹은 지난 2012년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한 이후 꾸준하게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추진해왔지만 지난해부터 이른바 리밸런싱 차원의 알짜 계열사들 매각에 나서면서 이번에 SK실트론을 시장에 내놓기로 한 것이다.


중견그룹인 애경도 그룹 모태이자 주력인 애경산업을 팔기로 했다. 애경그룹은 AK플라자 등 자산매각에 진척이 없고 지난해 12월 전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까지 터지면서 주력인 생활용품·석유화학·항공업 중에서 생활용품 주력 계열사를 팔아 지주사인 AK홀딩스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돈 안 되는'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아닌 '돈 되는' 사업을 제값받고 팔겠다는 것이다. 미·중 관세전쟁 격화와 중국기업 공세 등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과 경기침체 골이 깊어지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전통 산업과 첨단 산업을 가리지 않고 살 곳이 있을 때 매물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선제적이고 자발적 사업재편이 성공한다면 성장성과 안정성이 담보된 주력 사업에 '올인'해 재도약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반면 핵심 역량을 팔고 보강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업가치 훼손은 물론 그룹 전체의 성장성이 뒷걸음질 치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탄핵과 대선 정국으로 기업들의 사업재편 지원정책 수립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로 '돈줄 마른' 기업들만 고전분투하는 형국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6·3 대선에서 당선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빅3' 후보(이재명·김문수·이준석)가 경제 살리기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차 떼고 포 떼는' 기업들이 체력을 회복해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실력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6월 출범할 새로운 정부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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