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을 세우는 딜
사모펀드 '카브아웃' 투자 트렌드, 단순매매 아닌 경영역량 필요
이 기사는 2025년 05월 12일 07시 5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사모펀드(PEF) 투자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복잡한 투자 방식으로는 카브아웃(carve-out)이 꼽힌다. 바이아웃(경영권이전)과 다르게 카브아웃은 회사의 여러 사업부 가운데 일부를 인수하는 걸 의미한다. 통상 기업이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비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 후 매각하거나 자산양수도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카브아웃이 까다로운 데에는 딜 자체가 단순 매매가 아닌 기업 설계를 수반하는 영향이 크다. 사업부를 인수한 PEF는 대기업 체제에서 운영했던 전사적자원관리(ERP)부터 전략·인사·재무 등 경영 인프라까지 그룹 단위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카브아웃은 인수후통합(PMI) 과정에서만 수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여기에 노조 반발, 인재 유출 등에 대한 리스크관리도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사모펀드 전반적으로 인식이 악화하면서 하우스 신뢰도와 노사 관계 구축이 딜의 성사 여부를 결정짓기도 하고 있다. 이처럼 카브아웃은 대기업 브랜드와 자원을 등에 업고 돌아가던 사업부를 독립시킨다는 점에서 기업을 하나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복잡한 딜 구조와 PMI 난이도로 인해 국내에서도 카브아웃을 소화할 수 있는 하우스가 손에 꼽힐 정도다. 후속 투자를 위한 자금력과 ERP 구축, 조직 개편 역량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앤컴퍼니 등 대형 하우스가 대부분이다. 중견 하우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글랜우드PE가 카브아웃 중심의 투자 색채가 짙은 것으로 평가된다.


글랜우드PE의 경우 태생이 카브아웃 전문 하우스다. 하우스의 이름을 알린 동양매직, 한국유리공업 등의 거래가 모두 카브아웃 딜이었고, 최근에는 조 단위 거래로 거론되는 LG화학 워터솔루션 부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워터솔루션 부문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배경도 카브아웃 딜에 능숙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리턴이 크다는 점이 카브아웃의 장점이다. 통상 대기업이 카브아웃을 진행하는 데는 구조조정이나 유동성 확보의 목적이 큰 만큼 낮은 벨류에이션으로 매물을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PEF가 인수 후 인프라부터 조직까지 모든 걸 새롭게 세팅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바이아웃보다 밸류업의 여지도 큰 편이다.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카브아웃은 하나의 구조적 트렌드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단순 현금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을 넘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글로벌 경쟁 심화 등을 이유로 대기업들이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는 추세다. 특히 대기업 세대교체로 선택과 집중에 대한 경영 기조가 커지면서 카브아웃 매물을 앞으로 더 쏟아질 전망이다.


PEF가 레드오션이 된 바이아웃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카브아웃에 대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카브아웃은 PEF의 종합적 역량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시장이지만 그 만큼 기회가 열려있다. 이제는 PEF가 단순히 좋은 기업을 고르는 것을 넘어서 인프라 구축, 조직 관리, 리스크 대응 등 기업을 설계하는 경영자로서의 역량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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