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진단재계 당혹시킨 '현미경 심사'…판단 기준 제각각
과거 대기업들은 유망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를 거듭했지만 시장의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그룹 계열사 상장 이슈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중복 상장이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고질적 병폐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또 중복 상장 논란은 과거와 달리 '쪼개기 상장'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물적분할이 아니라 인수합병(M&A) 기업이나 신설 법인을 상장하는 사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중복 상장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가이드라인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기업들의 중복 상장 여부를 사업적 독립성, 경영상 독립성, 모회사 주주보호라는 요소를 기준으로 진단해 본다.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최근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중복 상장'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대기업 그룹사의 핵심 자회사들이 연이어 상장에 나서면서 '문어발식 상장'이나 '지분 쪼개기'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는 모회사와 자회사 간 상장 구조를 보다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현미경 심사'에 돌입했다.
중복 상장은 말 그대로 이미 상장된 기업 밑에 유사하거나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를 다시 상장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자회사의 상장이 모회사의 기업가치를 희석시켜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상장사 중 중복 상장 비율은 18.4%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4.38%), 대만(3.18%), 중국(1.98%), 미국(0.35%)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SK이노베이션은 2차전지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2021년 상장한 데 이어 SK온, SK엔무브의 상장도 추진하며 투자자 사이에서 논란이 확산됐다. 최근 SK엔무브는 거래소에 예비심사를 청구하기 전, 협의단계에서 투자자 보호 사항을 마련하라는 지적을 받고 상장 일정을 지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에도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체코 두산스코다파워 등 다수 자회사를 상장시켰고,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이관하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하면서 주주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중복상장 제한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법은 없는 상태로, 금융당국도 당혹스러운 상태다. 기업과 주관사는 심사 통과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려워지면서 IPO 전략과 자금조달 계획에 심각한 혼선을 빚고 있다. 중복 상장 여부가 예비심사 승인 여부의 결정적 변수가 되면서, 일각에서는 상장 기준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복 상장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 모회사의 소액주주 보호로 이어지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기업들의 경영 전략과 투자활동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으로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은 외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재무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핵심 사업부를 분할하면 해당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투자자를 기업에 우호적인 조건으로 유치하기가 훨씬 유리해진다.
다만 일부 기업의 소액주주들은 자회사가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의 투자로 성장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그 수익을 제대로 공유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제기했다.
현재 거래소는 중복 상장에 대해 '사업적 독립성', '경영상 독립성', '모회사 주주 보호' 등 세 가지 기준을 토대로 상장 적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중 모회사 주주보호와 관련한 여론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물적분할, 인적분할, 스핀오프식 자회사의 상장을 무조건 형태에 따라 막고 불이익을 주기보다 소액주주에 대한 명확한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주식매수 청구권이나 신주 우선 배정 등 소액주주 보호가 이뤄지면,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자유롭게 자금조달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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