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지난해 국내 대표 석유화학 업체들의 영업손실이 1조77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의 시름이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진다. 대규모 손실로 현금창출력이 악화하면서 유동성 관리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업체들은 비핵심 자산 및 사업 매각에 나섰다. 그만큼 당장의 재무건전성 개선이 시급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인 LG화학·롯데케미칼·여천NCC·효성화학은 지난해 연결기준 1조778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별 보면 ▲롯데케미칼 -8941억원 ▲LG화학 -5632억원 ▲효성화학 -1705억원 ▲여천NCC -1503억원 등이다.
LG화학의 경우 2023년 석유화학 4개사 중 유일하게 영업이익(1조8523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적자전환했다. 그외 3개사는 2022년부터 3년간 적자고리를 끊지 못했다.
긴 불황에 현금창출력도 크게 줄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지난해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3966억원으로 전년 대비 51.9% 감소했다. LG화학도 29.1% 줄어든 4조1191억원을 기록했다. EBITDA는 기업의 영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현금창출력을 뜻한다. 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등을 더한 값으로 기업 가치를 매길 때 핵심이 되는 지표다.
사실 업계에선 이미 수년전부터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지난해 말 완전자본잠식으로 주식 거래가 정지된 효성화학이 대표적 사례다. 자본잠식은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이며 자본금이 모두 사라져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에 접어들면 완전자본잠식이라고 한다. 효성화학은 부채비율이 비상식적 수준까지 급등하며 재무건전성이 크게 흔들렸다. 2018년 350.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이던 부채비율은 ▲2019년 353.8% ▲2020년 500.8% ▲2021년 522.1% ▲2022년 2631.8% ▲2023년 4934.6%까지 치솟았다.
현금창출력이 둔화하면 추후 차입금에 대한 차환 및 상환 과정에서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가운데 부채비율 상승으로 외부 자금조달마저 어려워지면 이자부담 확대는 물론 수익성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외부 자금조달 어려움도 이미 현실화했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세 번의 공모채를 찍었으나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하며 전액 미매각을 기록한 바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불황으로 외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금흐름도 둔화한 가운데 자산유동화를 비롯해 현금창출력 높이려는 경영활동 많이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러니 결국 업체들은 비핵심 사업을 매각해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말 특수가스사업부를 계열사 효성티앤씨에 9200억원을 받고 넘겼다. 이 매각대금은 전액 차입금 상환에 썼다. 최근에는 특수목적법인(SPC) 효성비나제일차주식회사에 효성화학 베트남 법인 비나케미칼 지분 49%를 양도했다. 양도금액은 3965억원으로 책정됐다. 이같은 노력으로 효성화학의 1분기 부채비율은 840%로 떨어졌다.
여천NCC는 지난달 모회사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지원으로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아직 1분기 사업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았으나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으로 부채비율이 크게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이 재무구조 개선 방안으로 선택한 건 주가수익스왑(PRS)이다. 지난해 10월 미국내 에틸렌글리콜(EG) 생산법인 LCLA(지분 40%·6600억원)를 시작으로 파키스탄 법인 LCPL(75.01%·979억원), 인도네시아 LCI(25%·6500억원) 지분을 활용해 PRS를 체결했다. LG화학의 경우 최근 워터솔루션사업부 매각을 위해 사모펀드 운용사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 부문의 핵심 제품은 RO멤브레인(역삼투막)으로 바닷물에서 염분과 오염 물질을 제거해 공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해수담수화 필터다. 매각금액은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업계 전반에서 추진 중인 비핵심 자산 매각과 자산유동화 작업이 일시적인 재무구조 개선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불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결국 근본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려 현금창출력을 회복하는 게 관건이라는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시급성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재무구조 개선의 필요성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불황이 바닥을 치고 실적 회복구간에 진입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근본적 체질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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