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저도 삼성전자를 오래 다녀봐서 알지만, 이 회사는 경영진의 의사결정 방식이 너무 수직적이다보니 분위기가 딱딱한 게 문제입니다. 내부적으로 '하지마' 라는 게 너무 많아요. 이번 주총에서도 임원들이 말실수 할까봐 형식적인 답변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SAIT 출신 삼성전자 주주)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끝난 후 현장을 빠져나오던 한 주주는 이번 주총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주주들의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주총에서 소통을 늘렸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답변보다는 형식적인 대답만 오갔다는 지적이다. 최근 임원들에게 '기술 경쟁력 제고'를 거듭 강조한 이재용 회장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총에서는 기술 혁신이나 구체적인 사업 방향성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이 주주는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주총에 참여하다가 이번에는 실적 부진에 대해 직접 질문을 하고자 처음으로 현장을 찾았다. 그는 "물론 말 한 마디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지만, 차라리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며 "삼성전자가 저 먼발치에 있는 회사가 아닌, 주주와 가까이 소통하는 회사가 되면 미래 비전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부언했다.
현장을 더 둘러보자 비슷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또 다른 주주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는 종합 전자 회사인데, 왜 반도체 하나 흔들린다고 회사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됐는지 궁금했다. 오늘 방문한 가장 큰 이유"라며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보보다 다소 부족한 답변을 받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19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번 주총에서는 소액주주들의 날선 송곳질문들이 쏟아졌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엔비디아 납품 여부, 대형 인수합병(M&A) 계획, 반도체 사업 경쟁력 회복 방안 등 질문은 각기 다양했지만, 방향성은 모두 회사의 미래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향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시장 불황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업적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현장에는 입장 한 시간 반 전인 오전 7시30분부터 주총을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주주들로 붐볐다. 사실상 온라인으로도 참여할 수 있었지만, '국민 주식'이라는 이름답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발걸음했다. 부모님이나 자녀와 함께 방문한 가족 단위의 주주들도 곳곳에 보였다. 이들은 주총 시작 직전까지 줄을 길게 늘어서고 있다가, 이내 안내를 받고 질서정연하게 주총장에 입장했다.

주총이 시작되자 현장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이날 총회는 이사회 의장을 맡은 한종희 부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의안 심의 및 표결, 사업부문별 경영현황 설명과 주주와의 질의응답 등이 이어졌다. 개회 시간인 9시부터 12시까지 장장 세 시간이 걸렸다.
의안 표결은 총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제1호부터 3호까지의 의안을 순차적으로 심의한 후 한번에 표결하고, 이후 제4호 의안을 따로 산정해 표결했다. 가급적 일괄로 진행해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을 다루는 제4안을 별도로 표결한 이유는 상법 제542조 12에 의거, 선임된 이사 가운데 선임해야 해 앞서 제2호와 3호의 안건을 먼저 완료한 후 상정해야 했다.
심의 후 진행된 질의응답 세션에서는 한종희 부회장이 "사업 관련 질문은 이후 주주와의 소통 세션에서 해달라"고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띤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재무제표 승인의 건을 다루는 제1호 의안만 해도 총 7명이 질문을 던졌다. 주가 부진 원인이 무엇인지, 주가가 언제쯤 재궤도에 올라갈지, 내부 회계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대형 인수합병(M&A) 계획이 있는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특히 대형 M&A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한종희 부회장은 "당사도 M&A가 중요한 사업 전략임을 알고 있고, 그동안 레인보우로보틱스·소니오·옥스포드시멘틱테크놀로지스 등 기업을 인수하며 여러 방면으로 M&A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는 보다 유의미한 M&A를 추진해 성과를 내겠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주요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승인 관련 이슈도 존재해 M&A에 어려움이 있으나, 반드시 성과를 낼 것이다. 관련 조직을 갖추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사내·사외이사 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등 주요 안건 모두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삼성전자 지분 7.2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전영현 반도체(DS)부문장(부회장) 사내이사 선임 건, 허은녕 사외이사 재선임 건,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건 등 세 의안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으나, 평균 92%가 넘는 찬성률로 무난하게 가결됐다.
총회장의 분위기가 가열됐던 건 마지막으로 진행된 주주와의 소통 세션이었다. 각 사업부장 등 주요 경영진 10명이 주총 단상에 올라 직접 답변했다. 총 12개의 질문 가운데 8개가 반도체 관련 내용이다 보니 전영현 부회장이 마이크를 자주 들었다.
전 부회장은 반도체 경쟁력 제고 방안 등의 질문에 대해 "삼성전자 주가의 많은 부분이 저희 반도체 부문의 성과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다. 빠르면 올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HBM3E 12단 제품이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내부적으로 제품 완성도를 강화하는 등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부터 시작될 HBM4, 커스텀 HBM 시장에서는 지난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차질 없이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모바일경험(MX) 부문에 관한 질문도 뒤따랐다. 질문 기회를 얻은 한 주주는 "경쟁사인 애플과 비교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고가 시장에서 현저히 밀리고 있는 가운데, 애플이 저가 시장에도 참여해 저가 시장도 침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반도체에 관한 투자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계속해서 '캐시카우'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은 AI를 강화해 모바일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그는 "갤럭시 AI가 올해 S25 시리즈를 기점으로 'AI 에이전트'로 발전하며 점점 개인화, 고도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며 "또 삼성전자 자체의 Al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타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으면 고객사들이 원하는 AI 트렌드를 앞서나갈 수 있고, 이를 통해 프리미엄 플래그십 모델부터 중가대, 보급형까지 시장 점유율이 확대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이날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의 말을 모아보면, 전체적인 사업 방향성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이들이 많았다. 이 니즈를 반영하듯 주총장에는 스마트싱스, 갤럭시 S25 시리즈, 투명 마이크로 LED, 하만 전장솔루션 등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제품들이 별도 부스를 통해 전시돼 있었다. 각 제품별 사업부서 홍보 관계자들이 직접 나서 주주들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로 하만 부스에서는 전장 솔루션의 사업적 지향점을 보여주고자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닌 제품들을 전시해놓았다. 또 갤럭시 S25 부스에서는 실제로 구매 의사가 있는 주주들이 방문해 AI 기능의 발전 방향에 대해 질문하거나 제품을 체험하고 있었다.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0살짜리 아들과 함께 주총장에 방문한 한 주주는 "세제 혜택이 있다보니 차근차근 주식을 사놨다. 아들도 300주를 보유한 주주"라며 "아들이 투자에 대한 개념을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주식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으니 인식을 심어주고자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현재는 사업적으로 부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저력이 있는 회사인 만큼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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