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레드오션 돼버린 VC업계
자본금 요건 강화…좀비VC 펀드청산 지원 절실
이 기사는 2025년 03월 18일 10시 0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5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2층 국화룸에서 열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2025년도 정기총회'에서 김학균 회장이 협회기를 흔들고 있다. 딜사이트DB


[딜사이트 박휴선 기자] "150~200개도 많아요."


최근 만난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VC들이 난립하고 있다. 국내 VC만 300여개가 된다. 이를 100개 내외로 줄여야 VC업계가 예전처럼 활성화 될 수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300여개는 신기술금융회사(신기사)까지 포함한 VC의 갯수다. 금융위원회 소관의 신기사는 자본금 100억원은 있어야 설립할 수 있지만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소관의 일반 VC는 자본금 20억원이면 설립할 수 있다. 


2017년 10월부터 자본금 요건이 기존 5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완화되면서 새로운 VC 조합을 설립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진입을 용이하게 해 시장을 보다 탄탄하게 만들겠다는 포부였지만 2017년 당시 신설된 VC조합만 164개에 달한다.


VC 설립 자본금 요건을 기본 100억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자본금 20억원만 있어도 VC를 설립할 수 있다 보니 우후죽순으로 VC들이 생겨나고 있다. 개점과 동시에 휴업에 들어가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우선 관리와 심사역 인력들이 모두 부족한 상태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때론 심사역들이 갑(甲)이 돼 주요 출자자(LP)들에게 비슷한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회사 측에 과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펀드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VC들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출자를 받는다. 세금을 통해 펀드를 조성하면 내부수익률(IRR)을 높게 올리고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해야 한다. 그러나 VC들 중 몇몇은 높은 수익률은커녕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마저 버거워 한다.


탈출하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 좀비 VC들도 많아졌다. 펀드 기한이 대체로 8년이고 1년씩 두 번 연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펀드를 가까스로 조성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는 VC들이 수두룩 하다.


좀비VC들의 펀드 청산을 업계에서 도와줘야 한다. 회생 불가능한 VC가 가지고 있는, 투자를 미처 다 하지 못한 펀드들의 경우 다른 VC에게 넘겨주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운용자산(AUM) 역순으로 자원을 받아 운용할 수 있는 규모의 VC에게 넘겨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AUM 순으로 펀드를 넘겨주면 대형 VC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들은 모두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 담긴 관상가 김내경(송강호 분)의 대사가 생각난다. "난 사람의 얼굴만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시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단순히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VC업계 규제 완화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어떤 것이 잘못됐는지,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VC협회는 최근 협회장을 새로 선출했다. 새출발을 위한 준비를 마친 만큼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VC 생태계가 옥석을 가려 다시 활기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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