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수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적용하는 레이어 수를 당초 계획보다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0나노급 6세대(1c) D램에서는 EUV 적용 레이어를 추가하려던 계획을 수정했고, 7세대(1d) D램에서는 증가폭을 크게 둔화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최첨단 공정으로 전환할수록 EUV 레이어 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후속 공정의 난이도가 함께 증가하다보니 계획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레이서 수가 줄면 원가 경쟁력 자체는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EUV 도입 이후 수율 저하로 인프라 투자 등에 대한 감가상각이나 원가 부담이 늘어난 상황이라 수율을 높이는 방향을 통해 장기적으로 원가를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EUV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극자외선 파장의 광원을 이용해 빛을 투사하는 노광 장비로,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EUV 광원은 기존 공정에서 사용되는 불화아르곤(ArF) 광원보다 파장이 짧아, 패턴을 훨씬 더 미세하게 새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기존 공정에서는 미세 회로를 새기기 위해 여러 번의 노광 공정을 반복해야 했지만, EUV는 이러한 공정 단계를 대폭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최근 EUV 적용 레이어 수를 2~3년 전에 계획했던 것보다 30% 정도 줄이고 있다"며 "원래 1c D램에서는 EUV 적용 레이어를 8~9개까지 채용하려 했는데, 이를 (현재 알려진 개수인) 6~7개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1d D램의 경우에는 EUV 적용 레이어의 증가폭이 이보다 더 크게 줄어드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UV 적용 레이어를 예상보다 줄이는 이유는, 레이어 수가 늘어날수록 공정이 복잡해져 안정성을 높이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EUV를 사용하면 공정 단계 수를 제어하고 회로 패턴을 보다 미세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EUV 적용 레이어가 많아지면 후속 공정에서의 난이도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도 안정성을 고려해 EUV 의존도를 다소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선 관계자는 "D램의 경우 노광 공정에서 EUV를 사용해 회로를 미세하게 그린 뒤, (후속 공정인) 식각 공정에서 이 회로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며 "그런데 회로가 미세화될수록 제거 작업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진다. EUV 적용 레이어가 많아질수록 세부적인 기술이 더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사용량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이상 수율 저하로 인한 원가 부담을 낮추려는 의도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1c 공정으로 전환하면서 수율이 저조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자, 1c D램 설계 변경에 착수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칩 사이즈를 당초 계획보다 키우는 등 생산성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완성도를 높이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생산성 저하로 이미 원가 부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EUV 적용 레이어를 늘린다고 성능이 무조건 향상되고 원가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의 기술력이 부족해 수율이 떨어지면 오히려 이로 인한 비용이 확대되는 등의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삼성전자도 EUV 적용 레이어 수를 당초 계획보다 줄여 기존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전자는 그간 EUV 장비를 충분히 확보한 만큼 신규 장비 도입에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유휴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신규 장비를 소폭 추가 구매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EUV 장비 한 대당 3000~5000억원 정도 소요되는데, 이를 줄이면 감가상각비도 함께 절감할 수 있다"며 "D램은 공정이 워낙 많아 EUV가 가격을 결정하는 데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향을 많이 끼치는 만큼 원가 절감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경쟁사를 의식해 신기술과 선단 공정을 무리하게 조기 도입하면서 안정성과 수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1c(6세대) 순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1z D램에서 EUV 공정을 1개 레이어에 적용한 것을 시작으로 이를 점차 확대해왔다. 하지만 당시 EUV가 초기 단계의 기술인 탓에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여파가 1c 공정까지 지속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장비 도입을 늦춘 SK하이닉스의 경우 오히려 이익률을 높이고 수율까지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도 D램에서 EUV를 무리하게 도입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지난 2021년부터 D램에 EUV 장비를 도입해, 1a→1b→1c로 공정이 고도화됨에 따라 EUV 장비 활용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마이크론 역시 1γ(감마·1c에 대응)부터 EUV 장비를 새롭게 도입했으며, 현재는 1개 레이어에만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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