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리포트]
한화
삼남의 체급 맞추기 '폭풍 행보'
로봇·반도체 사업에서 성과 내며 그룹 내 존재감↑
이 기사는 2025년 03월 18일 06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동선 부사장이 미래비전총괄을 맡은 계열사(그래픽=신규섭 기자)


한화그룹의 승계와 지배구조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승계의 큰 그림은 두가지다. 실질적인 후계자인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김동관·동원·동선 3형제의 안정적인 승계와 핵심 사업인 '방산·에너지' 중심의 그룹 재편이다. 삼형제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면서도 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화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김승연 회장이 건재하지만 최근 그룹 재편이 빨라지는 것도 그룹 지배구조를 안정화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향후 한화의 계열사 정리와 합병을 통한 승계,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한화그룹의 삼남인 김동선 부사장이 경영 공백기 동안 벌어진 두 형들과의 체급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한 모습이다. 그룹에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여전히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승계나 계열분리에 대해 줄곧 부인하고 있지만, 한화에너지 기업공개(IPO) 시작과 함께 승계 초석 다지기가 시작된 만큼 김 부사장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한화세미텍은 최근 SK하이닉스와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장비인 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제품 양산에 나섰다. 이 시장은 그동안 한미반도체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시장이다. TC본더는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는 HBM 제조 공정에서 각 D램을 붙이는(본딩) 역할을 맡는 핵심 장비로 한미반도체가 전 세계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한미세미텍이 체결한 계약 규모는 210억원으로 TC본더 10여 대 수준이다. 한화세미텍 이번 계약을 계기로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독점 시장에 균열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계약은 의미가 있지만,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세미텍의 미래비전총괄을 맡은 직후 나온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김 부사장은 지난달 10일 무보수로 한화세미텍의 미래비전총괄로 합류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화세미텍은 한화정밀기계에서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바꾸고 반도체 장비 전문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미텍은 반도체(Semiconductor)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당시 한화세미텍은 "차세대기술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는 김 부사장은 한화비전, 한화로보틱스 등에서 신사업 발굴에 주력해왔다"며 "김 부사장의 합류로 HBM TC본더등 최첨단 장비 중심의 시장 확대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약 한 달 만에 실제로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공급하는 중요한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앞서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단체급식 2위 업체인 아워홈을 인수한 데 이어 한화세미텍도 중요한 계약을 성사하면서 그룹 내 김 부사장의 위치와 무게감도 달라졌다. 그간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에 비해 김 부사장의 맡은 사업 규모나 무게감이 애매하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다.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회사 중 유일한 상장사인 한화갤러리아(2421억원)의 시총은 김동관 부회장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34조3226억원), 김동원 사장의 한화생명(2조3059억원)과 비교해 체급이 딸린다. 


김 부사장은 두 형들이 그룹 내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며 입지를 키워가는 기간에 경영 공백기를 가졌다. 2017년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뒤 2020년 12월 한화에너지 상무보로 경영에 복귀했다. 비슷한 시기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큐셀 부사장(2019년)을 거쳐 이듬해 ㈜한화 전략부문장 부사장이 됐고, 같은 해 9월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동원 사장 역시 2018년 한화생명 전무로 승진했으며 2021년 7월에 부사장에 올랐다. 


하지만 최근 김 부사장의 행보를 보면 두 형들 못지 않게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로봇과 반도체 모두 그룹에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산업이라는 점에서다. 김 부사장은 한화그룹 내 총 6개 계열사에 미래비전총괄로 이름을 올렸다. 한화갤러리아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그리고 한화그룹 기계부문(로보틱스·모멘텀·비전·세미텍)이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4월 김동선 부사장과 한화로보틱스를 함께 찾아 푸드테크를 시작으로 그룹 내 사업장에 로봇 기술을 확대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아워홈이 가진 사업장에 한화로보틱스가 개발한 협동로봇을 도입하는 게 그 시작이 될 전망이다.  


고부가가치 반도체 사업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한화그룹이 키우고 있는 또 다른 미래 사업이다.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와 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엔비디아 공급 체인'에 합류하게 됐다. 엔비디아는 챗GPT 등 AI 기술에 활용되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곳이며,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핵심 장비인 HBM을 공급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김 부사장의 행보를 보면 그룹 내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나 기본적으로 한화는 방산 등 B2B(기업 대 기업)의 비중이 워낙 큰 회사라 승계 과정에서의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여진다"며 "특히 기업대소비자(B2C) 사업이 최근에 경기 악화의 영향을 받아 본업이 안 좋아지고 있는 만큼 덩치를 키우는 것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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