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신성이엔지그룹은 자녀 간 교통 정리가 잘 이뤄진 그룹으로 꼽힌다. 창업주인 이완근 회장이 이미 지분 관계를 명확히 정리해, 세 자녀가 그룹 내 주요 요직을 맡으며 후계 구도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이완근 회장의 나이가 84세로 고령임에도 불구, 승계가 뚜렷하게 정리된 덕에 경영 불확실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7년 냉동공조사업으로 문을 연 신성이엔지그룹은 사업 영역을 차츰 확장해 현재는 반도체 클린룸 사업을 주력 분야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계열사는 신성이엔지를 포함해 총 28개다. 이중 차녀인 이지선 대표가 핵심 회사인 신성이엔지를, 장녀인 이정선이 IT 솔루션 기업 신성이넥스를, 장남인 이정훈이 벤처투자 기업 우리기술투자를 이끌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이완근 회장을 포함한 신성이엔지의 오너 일가 지분은 21.85%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차녀인 이지선 신성이엔지 대표 8.11%, 이완근 회장 7.15%, 장녀인 이정선 신성이넥스 대표 0.29%, 이 회장의 부인 홍은희씨 3.42%, 신성이넥스 1.13%, 장남인 이정훈씨가 대표로 있는 우리기술투자 0.64% 등이다.
총 지분율이 30%를 넘지 않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이 지분마저 계열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확보한 결과다. 이완근 회장은 2008년 처음으로 지주사 체제를 도입, '신성이엔지→신성홀딩스(지주사)·신성이엔지·신성에프에이(현 시너스텍)'로 인적 분할을 단행했다. 그러고는 8년 만에 다시 합병해 하나로 모았는데, 이 과정에서 두 자회사 지분을 지주사 주식으로 교환받아 총 24%에 달하는 자기주식을 취득했다.
합병 후 이완근 회장의 지분은 15.06%에서 8.75%로 떨어졌으나, 이는 계열사인 우리기술투자를 디딤돌 삼아 다시 늘렸다. 2018년 이완근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우리기술투자 지분 6%를 신성이엔지 주식과 맞바꿔 지분율을 17.58%로 올린 바 있다. 당시 가상화폐 투자 열풍으로 소위 '동전주'에 불과했던 우리기술투자 주가가 1만원대까지 급등해, 이완근 회장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경영 승계를 위한 밑작업도 이맘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차녀인 이지선 대표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로 사실상 낙점됐다. 1975년생인 이지선 대표는 2002년 신성이엔지에 주임으로 입사해 홍보·재무·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히 2013년 지주사격인 신성솔라에너지가 채권단과 체결한 자율협약을 '신성솔라에너지-신성이엔지-신성에프에이' 간 합병으로 신속히 종결시켜 회사의 유동성 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두 자녀가 이어갈 사업도 교통정리가 깔끔히 이뤄졌다. 장녀 이정선은 IT 솔루션 기업 신성이넥스를, 장남 이정훈은 벤처투자 기업 우리기술투자를 각각 단독 대표로 이끌고 있다. 신성이넥스는 신성이엔지 매출 의존도가 40% 수준으로 아직 높으나, 2021년 161억원이었던 매출을 2022년 202억원→2023년 240억원으로 점차 높이고 있다. 2022년 4300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던 우리기술투자는 2023년 영업이익 1539억원으로 회복했다.
이지선 대표가 단독 대표로서 전권을 맡게 된 건 불과 지난해의 일이다. 이전에는 제3의 전문 경영인이 지주사 대표를 공동으로 맡아 이지선 대표를 가까이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경영이 이뤄졌다. 이완근 회장은 2016년 이지선을 지주사 역할을 하던 '신성솔라에너지' 대표이사 자리에 앉히며, 이완근 단독 대표 체제에서 이완근·김주헌·이지선 '3인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2020년에는 이완근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지선·안윤수가 공동 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승계 작업을 위한 지분 이동도 이완근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2019년만 해도 1.06%에 불과했던 이지선 대표의 지분율(이완근 17.50%)은 이완근 회장과 어머니 홍은희 여사의 증여로 이듬해 5.23%(이완근 10.79%)로 늘었다. 이어 2021년에도 추가 증여를 받아 8.19%(이완근 7.63%) 지분으로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한편 이지선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 회사는 반도체 클린룸 설치 사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업황 사이클에 따른 실적 변동이 큰 만큼 바이오와 데이터센터 클린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반도체 매출 의존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이 두 분야를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태양광 사업 역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는 재생에너지 사업부문 매출은 2022년 1196억원→2023년 657억원→지난해 506억원으로 매년 하락세다. 같은 기간 10억원대였던 영업손익도 지난해 -14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수주 받은 프로젝트 일정 지연에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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