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파장의약품 관세 25% 현실화 확률은

[딜사이트 최령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의약품에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는 반도체, 자동차, 제약 등 주요산업에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이달 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에는 예외 없이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의약품 또한 같은 조치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약가 인하 정책과의 충돌 그리고 생산시설 이전의 현실적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발표한 데 이어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으로 관세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對美) 의약품 수출액은 15억1345만달러(한화 약 2조1600억원)로 전체 의약품 수출의 16%를 차지하는 만큼 대한민국 역시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의약품 생산 공급망 확대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의약품에 대한 보편적 관세 부과를 언급한 상태다. 그는 지난달 의약품 관세 부과 의사를 처음 밝힌 이후 글로벌 제약사를 대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제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글로벌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직접 만나 미국 내 생산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 시가총액 1위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가 270억달러(한화 약 38조6000억원)를 투자해 5년 내 미국 내 4개 제조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압박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움직임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도 해외 제조시설의 미국 기존 공장으로의 이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는 3일(현지시간) TD 코웬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필요하다면 해외 제조시설을 미국의 기존 공장으로 이전할 수 있다"며 "미국에 기존 제조 네트워크를 갖춘 회사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해야 할 경우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고려하면 의약품도 예외 없이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병원협회(AHA) 및 의약품 협회 등의 반대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의약품 분야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국적 제약사들을 직접 압박하고 있는 만큼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각 기업별 대비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의 의약품 관세 부과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미국은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의약품 및 의약품 생산 물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또 미국 내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의 62%, 원료의약품(API)의 86%가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관세 부과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의약품 가격 인상 및 공급망 불안정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 국민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약값을 지불하고 있다는 의식을 드러내며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번 관세 부과 방침은 이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선경 SK증권 연구원은 "생산시설 이전에는 규제기관 승인 등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되므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며 "관세 부과는 수익성 악화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생산성 저하와 약가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의약품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바이오의약품 생산거점을 확보한 뒤 해당 설비의 FDA 생산 허가(sBLA)까지 최소 2년이 소요된다"며 "미국 현지 생산시설을 건립하고 승인까지 받는 데 최소 4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임기 내 실효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4월 초부터 의약품 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적용 범위나 예외 조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전방위적 관세를 피할 수 없다는 분석과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바이오·제약 업계는 향후 트럼프 정부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장 한 관계자는 "광범위한 의약품 관세 정책은 즉시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 정부가 주장해 온 의약품 가격 인하와 상충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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