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이다. 비은행 계열사의 성장은 다양한 금융 분야에서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내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자리 잡았다.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은 국내 금융그룹 중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고 평가받는다. 딜사이트는 두 금융그룹이 거느린 주요 비은행 계열사의 현황 및 기여도 등을 비교·분석했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국내 금융그룹 계열 증권사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특히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 모두 비은행부문 계열사의 수익 비중 확대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계열 증권사를 활용하는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경영자(CEO)나 부문별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을 보면 금융지주의 입김이 다르게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다. KB증권은 내부 인사를 CEO에 선임해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해주고 있다. 반면 신한투자증권은 지주사 출신 또는 외부 인사를 영입해 CEO와 부문 대표 자리에 앉히면서 증권과 은행간 시너지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의 지난해 순수수료수익 7885억원으로 전년대비 6.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 증가한 7733억원, 당기순이익은 50.3% 늘어난 5857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4대 금융그룹 계열 증권사 중 가장 양호한 실적이다. KB금융의 전체 순이익에서 KB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1.5%가량이다.
신한투자증권의 지난해 순수수료수익은 7690억원으로 KB증권과 비슷하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차이를 보였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7.2% 증가한 3725억원, 당기순이익은 143.6% 늘어난 2458억원을 기록했다. 130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했지만 개선된 성적표를 받았다는 평가다. 신한금융의 전체 순이익 중 신한투자증권 비중은 5.4% 수준이다.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 합병으로 탄생한 KB증권은 KB금융의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비은행부문 계열사 중 KB손해보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KB증권은 금융지주로부터 증권업 전문성을 인정받아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두명의 대표이사(CEO) 모두 내부에서 승진한 인사라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김성현 대표는 KB투자증권, 이홍구 대표는 현대증권 출신이다.
IB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김성현 대표는 5연임에 성공한 '장수 CEO'다. 부채자본시장(DCM)·주식자본시장(ECM) 부문 등 기업금융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장지위를 유지하면서 견고한 수익창출력을 입증했다. IB부문 외에도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문에서도 빠른 안정화와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WM(자산관리) 부문을 맡고 있는 이홍구 대표는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WM사업의 외형 확대와 질적 성장세를 확대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속한 조작 안정화와 영업력 강화를 이끌어내 지난해 우수한 경영성과를 보여줬다.
KB증권의 경우 합병 전후로 대부분 내부 출신 인사가 승진해 사장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과거 한누리투자증권 시절부터 은행권 인사가 CEO를 맡은 적은 거의 없었다. KB국민은행 부행장을 역임했던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만 예외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KB증권은 한 주관사PT 경쟁에 금융지주 회장이 전화해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며 "그만큼 증권의 성장을 도우면서도 인사에서의 개입을 최소화해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내부 승진자가 많고, 현대증권 출신 인사도 고루 배치돼 순조로운 합병을 마친 증권사에 속한다"고 말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부터 증권업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3사장 체제'를 시도하고 있다. 사장 중 2명은 금융지주 출신, 1명은 내부 승진자다. 3명의 사장을 두는 것은 신한투자증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신한투자증권은 2016년 임기를 마친 강대석 전 대표까지 금융지주에서 보낸 인사가 사장 자리를 맡았다. 이후 김형진 전 대표, 김병철 전 대표, 이영창 전 대표, 김상태 전 대표 모두 증권업계 인사가 사장 사리에 올랐지만 모두 금융지주가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였다. 이선훈 대표는 대부분의 이력을 신한투자증권에서 쌓은 내부승진 인사라는 점에서 신한의 달라진 행보로 읽힐 수 있다.
다만 다른 두 명의 사장은 금융지주 출신이다. 이선훈 대표이사 사장은 기존 전략기획그룹과 경영지원그룹을 통합한 경영관리총괄을 맡고, 신한금융지주 출신인 정용욱 부사장과 정근수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각각 자산관리총괄 사장과 CIB총괄 사장을 맡고 있다.
사실상 신한투자증권의 주요 수익원인 WM부문과 CIB부문은 신한은행 출신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증권사 경영의 독립성이 높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위험자본 투자와 독창적인 딜 수임능력이 필요한 증권업은 은행지주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수익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은행 출신 대표가 선임되더라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고, 대형사가 발행어음으로 수익을 내는 비중을 제외하면 지주 순이익 비중에서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