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퇴직연금 제도가 2005년 12월 처음 시행된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적립금 기준 400조원을 넘었고 2040년 10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빠르게 성장 중인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다양한 금융 분야의 쟁쟁한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개별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사업을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최지혜 기자] NH농협은행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적립금, 적립금 증가폭, 수수료수익 등 퇴직연금 관련 지표 전반이 시중은행 중 가장 저조한 상황이다.
기업과 기관 단위로 유치하는 적립금 규모는 타 시중은행과 비슷하다. 그러나 수익률이 현저히 낮은 탓에 개인고객 단위로 가입하는 상품의 적립금이 시중은행 평균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 이에 올해 신규 개인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수익률 관리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농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23조4550억원으로 전년대비 13.0% 증가했다. 퇴직연금 적립금과 적립금 증가 폭 모두 시중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농협은행은 기업과 기관 단위의 퇴직연금 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학교와 공기업 등 공공기관을 유치하고 있어 자연스레 이들 종사자의 퇴직연금을 적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확정급여형(DB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인 이유기도 하다. DB형 상품은 기업·기관이 임직원의 퇴직금을 금융사에 맡기는 형태다.
지난해 말 기준 농협은행의 DB형 적립금은 전체 퇴직연금의 50.7%로 나타났다. DB형 상품 적립금(11조8967억원)만 보면 우리은행(10조8903억원)을 약 1조원 앞선다. 타행보다 수익률이 낮지만 주거래은행을 장기간 유지하는 공공기관 특성과 맞물려 적립금은 꾸준히 늘었다.
반면 확정기여형(DC형)과 개인형IRP 등 개인 단위 고객이 운용하는 상품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농협은행의 두 상품 적립금은 각각 6조6608억원, 4조8975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신한·KB국민·하나은행은 모두 10조원 이상의 적립금을 쌓았다. 특히 개인형IRP의 경우 신한은행(15조6043억원) 적립금과 비교해 3분의1 수준에 그친다.

DC형과 개인형IRP에서 약세는 낮은 수수료이익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농협은행이 거둔 퇴직연금 수수료이익은 976억원으로 5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1000억원을 하회했다.
DC형 상품의 경우 은행권 비용부담률이 0.48%에서 0.58%대로 높아 관련 수수료이익 기여도가 상당한 편이다. 개인형IRP의 비용부담률은 0.3%대로 상품 중 가장 낮지만 개인 가입자가 직접 적립금을 추가할 수 있어 규모 면에서 영향력이 크다. 이 때문에 수수료이익뿐 아니라 은행의 총수신 확보에도 중요도가 높은 상품으로 분류된다.
개인고객 확보를 위해 수익률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농협은행의 퇴직연금 상품은 시중은행 중 최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입 비중이 압도적인 원리금보장 상품을 기준으로 보면 DB형, DC형, 개인형IRP 모두 1년 단기수익률이 시중은행에서 가장 낮다. DC형 상품의 경우 원리금보장 3·5·7·10년, 원리금비보장 3·5·7·10년 수익률이 모두 최저다.
개인형IRP 상품의 원리금보장 장기수익률 역시 최하위 수준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 원리금보장 개인형IRP의 5년 수익률은 1.92%였다. 농협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들이 모두 2%대 수익률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원리금보장 DB형 상품의 7년 장기수익률 역시 1.97%로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1%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준으로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2.23%, 2.17%의 수익률을 보였다. 농협은행의 DC형 단기수익률은 7.32%에 그쳐 하나은행(12.83)과 5.51%포인트(p), 신한은행(10.55%)과 3.23%포인트 차이가 나고 있다.
농협은행은 적립금 확대를 위해 신규 고객 유치에 집중했다. 지난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추진하고 상품 라인업을 강화했다. 지난해 말까지 개인형IRP 연금지급고객대상 수수료 면제를 시행했고 이달까지 연금지급 등록 고객과 5만원 이상 신규가입고객, 이전 고객을 대상으로 치킨과 햄버거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올해의 경우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우선 수익률 관리를 위해 로보어드바이저(RA) 투자 일임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RA는 로봇(Robot)과 자산 관리 전문가(Adviser)의 합성어로 투자자의 투자 성향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활용해 자산 운용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RA일임 서비스는 개인형IRP에 한정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이 외에도 농협은행은 찾아가는 운용 컨설팅을 마련하고 퇴직연금 관련 고객경험을 개선해 편리한 운용을 제공하는 등 퇴직연금 전반의 서비스를 개선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안정적인 상품관리를 위해 선별한 우량주들이 지난해 증시 악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이 등락을 겪었다"며 "올해는 수익률 관리를 통해 사업확대 노력에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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