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巳年 인터뷰]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삼성, AI 생태계 구축 나서야"
AI 반도체 대두 속 '소프트웨어 패배주의' 발목…중장기 집중투자 '관건'
이 기사는 2025년 01월 28일 06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문송천 KAIST 명예교수. (사진=전한울 기자)


[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삼성전자도 시대에 편승하는 사업구조를 타파하고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선 오랜 '소프트웨어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합니다."


국내 1호 전산학 박사이자 컴퓨터 데이터베이스(DB)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문송천 KAIST 명예교수가 딜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가 미국 CES(소비자가전전시회) 기조연설을 마친 뒤 미래 지향적 사고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주가가 일시 하락했다. 하지만 향후 사업, 기술 측면에선 반드시 필요한 인공지능(AI) 청사진을 내비치며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는 데엔 성공했다. 이에 문 교수도 '삼성전자 위기설' 실체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꾸준한 소프트웨어 투자를 통해 AI 협력사가 아닌 생태계 주도자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한파가 장기화되면서 '삼성전자 위기론'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 반도체 부문에서만 1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는 데 이어, 지난해 4분기에도 시장 전망치를 30% 가까이 밑도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2개분기 연속 컨센서스를 하회했다. 올해 상반기도 경기침체 여파와 더불어 중국시장 D램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실적 부진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상장기업 순위에서 7계단 하락하며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포브스는 매년 글로벌 주요기업의 매출·순이익·자산·시가총액 등을 종합 평가해 순위를 발표한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SW) 기업은 경기침체 여파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을 유지했다.


문 교수는 이같은 소프트웨어 산업 약진세에 주목했다. 최근 노벨 물리학, 화학상 수상자가 모두 AI 전문가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과거 의과학 전문가들이 30여년에 걸쳐 해결할 법한 문제를 AI 검색엔진이 5분 만에 풀어내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 제조산업 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분야도 계산물리, 계산화학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도 AI 전문가라고 불리지만 결국 그들도 강력한 운영체제(OS)와 데이터베이스(DB) 등 소프트웨어에 종속된다"며 "소프트웨어가 반도체, 자동차 등 만물에 침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위주 성장을 이뤄온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향후 시대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부문을 반등을 위한 조건으로 꼽았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대를 차지하는 황금알로 꼽힌다. 향후 AI·자율주행 등 미래 유망산업에 대거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 성장세는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전세계 비메모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대에 불과하다. 문 교수는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부문서 도약하기 위해선 칩 개발 전주기를 아우르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삼성전자가 막대한 자본을 풀기 시작하면 언젠가 경쟁사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단순 AI 칩에 적용되는 HBM이 기업 성장성 전체를 담보할 순 없다"며 "미래를 본다면 진짜 경쟁은 엔비디아 등 소프트웨어 기업과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AI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향후 유망산업 및 관련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빅테크에 버금가는 연구개발비를 집행하면서도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경쟁사들과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문 교수는 "협력사이면서도 GPU 경쟁사인 엔비디아는 20년간 연구개발한 GPU 개발툴 '쿠다(CUDA)'를 앞세워 현재 고객사 4만여곳을 유치했다"며 "물리 AI인 '코스모스'로 로봇시장 선점에 나서며 대군단을 꾸리고 있고 인텔도 최근 '원API'라는 명칭의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텔 '원API' 생태계에 편승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체 생태계가 없다는 점은 향후 시장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앞으로도 OS, DB 관련 사업에 힘을 싣지 않더라도 엔비디아 같은 생태계는 구축해 놔야 제 2의 '코스모스'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문 교수는 삼성전자가 경영·사업구조 혁신을 통해 미래 성장투자에 꾸준히 힘을 실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체질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아닌 종합 사업에 익숙해 과거 자체 OS 개발을 포기한 이력이 있고 이후 '소프트웨어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왔다는 분석이다. 


그는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는 역량이 아닌 꾸준함이라는 점"이라며 "앞서 엔비디아도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면서 20여년 만에 인텔을 따라잡는 데 성공한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가 미국 기업 대신 일본의 도요타와 손을 잡으며 시장 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사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다각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동안 삼성전자 사업 기조는 외부요인 변화에 따른 수혜를 기다리는 식이었는데 이제 자체 소프트웨어 파워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문 교수는 AI 반도체 수요과 직결되는 파운드리·저전력 반도체 등 주요 기술도 지속 고도화해 반등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근 신흥 강자로 떠오른 브로드컴이 엔비디아와도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배경에는 기존 GPU가 해결하지 못한 ASIC의 저전력 성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딥러닝의 경우 행렬계산된 파라미터가 천억개에 달하는 특성상 막대한 전력 소모가 일어난다"며 "단순 파라미터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운드리도 결국 하드웨어가 아닌 데이터 문제"라며 "시장 1위 TSMC는 수많은 생산 경험을 통해 확보한 양질의 데이터를 수율 등 경쟁력 제고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도 앞으로 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며 양질의 빅데이터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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