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로봇 시장을 선점하고자 휴머노이드 전문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에 대한 콜옵션 1차 행사 시점을 조기에 결정했다. 하지만 업계 예상대로 반도체 공장(팹) 무인화 등 다양한 사업에 로봇을 적용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선적으로 휴머노이드 분야에 힘을 쏟고 장기적으로 M&A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함께 로봇 사업에 속도를 낸다. 이번 콜옵션 행사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함과 동시에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 직속의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 레인보우로보틱스 창립 멤버인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단장 자리에 앉혔다. 양사 간 시너지협의체도 만드는 등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도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 전시회 'CES 2025' 현장에서 기자간담회에서 "M&A(인수합병)를 통해 기대 성장 동력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며 "로봇은 상당히 중요한 미래 성장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우선적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사업에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국내 최초 이족 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하는 등 관련 노하우를 보유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무엇보다 다른 분야에 배치할 만한 인력이 부족하다. 엔지니어 포함 100명도 안 되는 인력을 보유해 다른 사업을 함께 추진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양사는 '새로운' 지능형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늦어도 올해 1분기 안에는 휴머노이드 시제품을 공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서는 하드웨어의 완성도는 상당 수준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사업 진출 의지를 확실히 밝혔고, 제품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여 현재로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더불어 부품 단계부터 양사가 힘을 합쳐 새롭게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에 없던 로봇을 만들기 위해 주변 부품도 함께 동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핵심 부품 내재화 속도가 타사 대비 빨라, 이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로 매출원가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감속기를 포함한 부품 내재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엔코더, 제어기 등 주요 부품 내재화에 성공했으며, 일부 제품에는 탑재까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상수 IM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매출원가 하락을 통한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큰 경쟁력"이라며 "감속기는 로봇 제조원가의 30~40%가량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아, 내재화를 통해 원가를 크게 깎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AI·소프트웨어 기술이 성장에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상 삼성전자가 홀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하드웨어 관련 레퍼런스는 보유하고 있을지 몰라도 현재 필요한 '로봇용 AI 소프트웨어'는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라 사실상 도움을 줄 만한 게 없다"며 "삼성전자가 직접 개발해야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을 약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재개한 만큼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AI를 탑재한 것처럼, 결국 차세대 휴머노이드 시장에서는 AI를 어떻게 적용할 지가 관건"이라며 "삼성전자가 혼자 진행하기는 힘들고, 엔비디아와 같이 기초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업체와 함께 해야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올해 상반기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컴퓨터 '젝슨 토르' 출시를 앞두는 등 휴머노이드 산업에 힘을 쏟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공정에서 당장 유의미한 협력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정에서 무인화율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휴머노이드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이동형 양팔로봇 'RB-Y1'이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RB-Y1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판매용 제품이라기보다는, 도요타의 요청으로 주문 제작한 제품이라 이를 삼성전자 내부에서 사용할 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수준의 휴머노이드를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100% 휴머노이드라면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이동형'과 같이 제한적인 기능의 휴머노이드를 반도체 팹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고, 차라리 스마트폰이나 가전처럼 반도체보다는 비교적 미세한 정도가 낮은 공정에 투입되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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