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CEO 포부이규복 현대글로비스 사장, 기업가치 강화 '총력'
푸른 뱀띠 해인 을사년(乙巳年)을 맞는 세계 경제는 '차이메리카', '신냉전 2.0'의 커다란 줄기 속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치열하게 생존해 나가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특히 미중 무역갈등 심화는 글로벌 시장의 최대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변화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 조정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이에 딜사이트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이러한 난국을 극복해 나갈 새로운 CEO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 임기를 이어간다. 현대자동차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 전문가인 이 대표가 종합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로 발령 받았을 당시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물류업의 경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이 대표 경력 대부분이 재무 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발탁한 이 대표의 임무는 명확했다. 정 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는 향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가 부양의 필요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사장 승진 역시 정 회장이 이 대표 체제에 힘을 더욱 실어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 부사장 2년 만에 사장 승진…35년 현대차맨, 정의선 회장 '신임'
3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11월18일부로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은 이 대표가 현대글로비스 재무 건전성을 대폭 개선시켰을 뿐 아니라 창사 이래 첫 인베스터 데이를 개최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미래 E2E(End to End)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시킨 점도 인정받았다.
1968년생인 이 대표는 부산 낙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1988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이 대표는 2022년 12월 현대글로비스로 적을 옮기기 전까지 약 35년간 현대차에서만 근무한 '오리지널 현대차맨'이다. 현대차 재무관리실장이던 2010년 말 임원 첫 단계인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이 대표는 주요 해외 법인에서 '해결사' 역할을 수행했다. 예컨대 현대차는 신흥 시장인 브라질에 판매법인 'HMB'를 설립했고, 2013년 이 대표를 HMB 재경담당 임원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초기 고정비 부담 증가에 따른 수익성 부진을 방어하고, 운영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프랑스 판매법인 'HMF' 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대표는 현지 전략 신차를 대거 출시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전개했고, 수년 간 이어진 순손실에서도 벗어났다.
이 대표의 이후 행보를 살펴보면 정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표는 2018년 말 상무로 승진하며 북미·유럽 시장의 회계 및 재무를 총괄하는 미주유럽관리사업부장에 선임됐으며, 2020년 3월 전무에 오르며 신설 조직인 프로세스혁신사업부장에 앉았다. 해당 보직들은 정 회장이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영전(2018년 9월)한 뒤 친정 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새로 꾸린 조직이었다.
◆ 전문성 중요한 물류업, 재무통 발탁 '의아'…지배구조 개편 '열쇠'
이 대표는 전무 3년차이던 2022년 말 현대차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부사장 승진과 함께 현대글로비스 새 수장으로 낙점됐다. 그동안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이사로 비(非)재무 전문가를 선호해왔다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인 인사였다. 특히 현대글로비스가 신사업 진출을 통한 현대차그룹 의존도 축소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는 점도 의아함을 가중시키는 요인이었다.
실제로 이 대표 전임자인 김정훈 전 대표는 현대차·기아 구매본부장을 역임한 부품 전문가다. 현대글로비스 최장수 CEO(최고경영자) 타이틀을 쥐고 있는 김경배 현 HMM 대표는 오너가 비서실 출신이었다. 또 이광선 전 사장과 양승석 전 사장, 김치웅 전 부회장은 각각 영업과 생산, 구매 전문가로 분류된다.

업계는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단일 최대주주라는 점에 주목했다.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정 회장이 경영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분 정리 과정에서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지분구조는 올 3분기 말 기준 ▲정 회장 20% ▲현대차 4.9% ▲현대차정몽구재단 4.5%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AS 11%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 10% 등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18년 초 1차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현대모비스 모듈과 사후관리(AS)부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이 골자였지만, 합병 비율이 현대글로비스 주주들에게 유리하게 책정됐다는 논란이 불거져서다. 현대차그룹은 2차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서 함구 중이지만,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공법'을 따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 회장이 2조원에 달하는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처분해 현대모비스 주식을 매입하거나, 주요 계열사 간 주식 스왑(교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 기업가치 전략 일관성 보장…주가 상승·배당 확대
업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이 대표 체제를 지지하는 주된 배경으로 주가 상승 전략의 일관성 유지를 꼽는다. 이 대표가 이미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은 집고 넘어갈 부분이다. 예컨대 2023년 연초 주당 8만원대 후반 수준이던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이 대표 취임 이후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현재 12만원에 육박한다.
견조한 주가 흐름은 안정적인 실적 성장세에서 기인했다. 현대차그룹사 물량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을 뿐더러 비계열 물량 비중 확대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미래 성장성도 확보 중이다. 대표적으로 현대글로비스는 항공화물 포워딩 역량 확보를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인수하는 에어인천 대주주 펀드에 출자했다.

특히 현대글로비스가 지난 8월 단행한 1주당 1.0주의 무상증자도 주효했다. 통상 무상증자는 유통주식수가 확대되고 기업의 이익 체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가 상승 재료가 된다. 그 결과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 가치는 2023년 1월26일 6854억원 상당에서 2024년 12월24일 1조7685억원으로 불어났다.
현대글로비스의 고배당 정책은 정 회장 승계 실탄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회사는 2022년 실적에 대한 결산 배당부터 전년 대비 주당배당금(DPS) 50% 상향을 명문화했다. 정 회장은 2021년 말 기준 주당 3800원 총 332억원을 받았다. 이듬해부터 강화된 배당 정책에 따라 2022년 주당 5700원 총 427억원을 수령했으며, 지난해 주당 6300원 총 472억원이 지급됐다.
여기에 더해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10월 고강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발표했다. 먼저 현대글로비스는 기업가치제고 핵심지표로 총주주수익률(TSR)을 선정했다. 세부적으로 ▲2030년까지 매출 40조원 이상과 영업이익 2조6000억~3조원 이상을 달성하고 ▲배당성향 최소 25% 이상과 DPS 최소 5% 상향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단순 계산으로 올해 실적에 대한 최소 배당금은 3308원(무상증자 반영)이며, 정 회장이 받을 배당금은 500억원 이상으로 파악된다.
기업지배구조 한 전문가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과거와 유사한 방안을 내놓기 어려운 만큼 현대글로비스를 향한 주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주가의 하방 경직성이 유효한 가운데 호실적과 고강도 주주친화책이 맞물리면서 배당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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