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세계 3위 일본 낸드플래시 기업 키옥시아홀딩스(옛 도시바메모리)가 상장하면서, 주요 주주인 SK하이닉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플랜과 협력 관계 등을 놓고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K하이닉스에게는 일부 엑시트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거나,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키옥시아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지분 매각보다는 '현상 유지'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키옥시아는 지난 18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주당 1455엔(한화 약 1만3700원), 예상 시가총액은 7800억엔(약 7조3700억원)으로 당초 이 회사가 기대했던 목표가(1조5000억엔·약 14조원)의 40% 수준에 그쳤다. 상장 첫날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종가 기준 시가총액 8630억엔(약 8조1000억원)으로 마감했다.
동시에 키옥시아에 투자한 SK하이닉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미국 투자펀드 베인캐피탈이 주도하는 한미일 컨소시엄에 3조9100억원을 간접투자해 키옥시아 지분 19%를 획득한 바 있다. 이 컨소시엄은 당초 재무적 투자 차원에서 형성됐고, 여기에 참여한 일부 주주와 키옥시아 2대 주주인 도시바는 이번 상장을 통해 지분 일부를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도 일부 엑시트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그간 키옥시아의 저조한 실적으로 수년간 평가손실 부담을 떠안아온 만큼 매각 후보군에 올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키옥시아는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낸드플래시 업황 침체로 SK하이닉스에 ▲2022년 1조882억원 ▲2023년 1조6558억원의 평가손실을 안겼다. 또 SK하이닉스가 현재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캐파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자금을 마련할 필요성도 높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잉여현금흐름(FCF)이 양호한 가운데 키옥시아의 기업가치가 낮게 책정돼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SK하이닉스의 올 3분기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자본적지출(순유형자산증가액+감가상각비)을 뺀 FCF는 10조3493억원 수준이다.
상장 첫날 종가 시가총액(한화 약 8조1000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SK하이닉스의 지분가치는 1조5390억원이다. 여기서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 지분을 최대 15% 추가로 인수할 수 있는 전환사채를 행사할 경우 지분가치는 2조7540억원까지 늘어나지만, 시장에서는 지분 확대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시장 한 관계자는 "그간 키옥시아가 상장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예상 기업가치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서 상장했다"며 "SK하이닉스가 현금창출 여력이 있는 만큼, 향후 투자자산 가치가 높아지면 그때는 엑시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키옥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할지는 미지수다. 본사와 자회사 솔리다임에서 낸드플래시 사업을 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키옥시아의 경쟁력만 높이고 특별한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아서다. 최근 양사가 공동 개발한 'M램'도 기술 협약 수준에 그칠 뿐 향후 유의미한 성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평가다.
앞선 관계자는 "2016년 경쟁사들 사이에서 3D 낸드플래시 투자가 확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가 오히려 SK하이닉스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불장군' 이미지가 있었다"며 "당시에는 키옥시아가 기술적 우위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다들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며 "이제는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에 정보를 오픈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실제 키옥시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SK하이닉스와 간접적 지분 관계만 존재하고 특별한 교류가 없어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키옥시아는 이번 상장으로 1200억엔(약 1조1200억원)의 자금을 조달, 이 중 대부분을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 AI 반도체에 투자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글로벌 eSSD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43.4%),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 27.9%), 마이크론(15.6%) 순이다. 키옥시아는 8.6%로 4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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