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양대 산맥인 현대차·기아의 재무 라인에 관심이 쏠린다. 통상 현대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계열사 대표이사로 영전하기 전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로 꼽히는 만큼 이승조 전무의 부사장 승진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기아다. 그동안 현대차에 비해 주목도가 크지 않았던 기아 재무 부문은 올 들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부각 받고 있다. 특히 주우정 전 CFO가 알짜 계열사로 이동한 가운데 최초의 '기아 순혈 CFO'인 김승준 전무의 존재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 이승조 부사장, 전무 1년 만에 승진…대대로 계열사 CEO 영전
24일 재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 CFO이자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이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전무로 승진한지 약 1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이 같은 고속 승진은 현대차가 앞서 밝힌 올해 재무 목표를 초과 달성한 데다, '2030 전략'을 수립한 성과 등을 인정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세부적으로 현대차는 올해 연결기준 매출 성장률 4~5%와 영업이익률 8~9%를 제시했다. 현대차는 올 들어 3분기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3% 증가한 128조6074억원을 기록했으며, 이 기간 영업이익률은 8.9%로 목표치에 부합했다. 또 이 부사장은 오는 2030년까지 현대차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 톱 3위 안착을 목표로 주요 거점 확보와 전기차 라인업 강화 등을 진두지휘했다. 아울러 현대차가 글로벌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올 A등급을 받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9년생(만 55세)인 이 부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말 임원인사 첫 단계인 이사대우(경영관리실장)로 승진한 이 부사장은 재무관리실장, 재경사업부장 등 현대차 재무라인이 거쳐야 할 정통 코스를 차근차근 밟았다. 현대차그룹 감사실에서도 약 2년간 근무하며 조직 관리 업무를 보기도 했다.

이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해 9월 재경사업부장에 임명되면서다. 현대차 CFO였던 서강현 현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당시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과 호흡을 맞추던 이 부사장은 약 2개월 뒤 신임 기획재경본부장(전무)에 선임됐다. 현대차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서 대표가 현대제철로 이동한 데 따른 후속 인사였다. 이 부사장은 올 3월부터 사내이사로서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 중이다.
특히 이 부사장의 빠른 승진 속도도 눈길을 끈다. 예컨대 직전 현대차 CFO였던 서 대표의 경우 2019년 전무 승진과 함께 현대제철 재경본부장으로 이동했으며, 2021년 1월 부사장 진급과 함께 현대차로 복귀했다. 서 대표가 전무에서 부사장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이 부사장은 이 기간이 훨씬 짧다.
이 부사장은 이번 인사로 그룹 내 영향력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애초 현대차 CFO가 계열사 최고경영책임자(CEO) 등용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서 대표를 비롯해 이원희 전 현대차 사장, 최병철 전 현대차증권 사장이 대표적이다.
◆ '재무통' 주우정, 현대ENG 대표 이동…내부 출신 첫 CFO, 입지 확대 유리
기아 재무 임원의 위상 변화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 주우정 부사장을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했다. 주 신임 대표는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 전문가다. 기아의 창사 최대 실적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두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실제로 기아가 기 발표한 연간 재무 목표치와 비교할 때 매출은 73~76.5%, 영업이익은 75.4~77.7%를 달성 중이다. 영업이익률은 12.4%로 목표치를 상회할 뿐 아니라 그룹사 최고치를 경신했다. 앞서 기아는 연초 ▲매출 101조1000억원 ▲영업이익 12조원 ▲영업이익률 11.9%의 계획을 발표했으나, 올 10월 ▲매출 105조~110조원 ▲영업이익 12조8000억~13조2000억원 ▲영업이익률 12%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기아의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80조3000억원이며 영업이익은 9조9507억원으로 집계됐다.
주 대표가 타 계열사 대표 자리를 꿰찰 수 있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 내 기아의 지위 향상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건설업 침체에 따라 재무건전성 확보와 수익성 강화가 주요 과제로 부상한 만큼 기아가 재무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이는 과거 기아 CFO의 행보와도 대조되는 부분이다. 주 대표 전임자인 한천수 전 기아 부사장의 경우 CFO 임기를 마치고 회사를 떠났으며, 박한우 전 사장의 경우 기아에서 대표를 역임했다. 또 박 전 사장과 바통터치한 이재록 전 부사장도 해당 직급을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공석이 된 기아 CFO는 경영관리실장을 맡던 김승준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며 꿰찼다. 1972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전무는 2000년 기아로 입사했다. 재경기획팀장과 경영분석팀장, 재무관리실장 등 재무 부서를 두루 거친 김 전무는 내년 3월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내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김 전무가 이례적으로 '정통 기아맨'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전까지 현대차나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출신들이 기아 재무 라인을 장악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특히 김 전무가 입사한 2000년은 현대차로 인수된 기아가 처음으로 공채 직원을 뽑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김 전무의 경우 주요 계열사 이동 없이 기아 한 곳에서만 근무한 만큼 내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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