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최근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경영을 둘러싼 불만이 커지면서, 이 회사가 물적분할한 'DB글로벌칩'과 인수합병한 '디비월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당초 DB하이텍이 DB글로벌칩과 디비월드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려 했지만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DB가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운 후 별다른 후속 대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자회사인 DB글로벌칩은 지난해 모회사로부터 분사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1분기 403억원→2분기 584억원→3분기 514억원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누적 매출 1501억원으로, 분사 이전인 2022년 모회사 팹리스 사업 부문이었을 당시 매출이 2744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분사 이후 오히려 감소할 전망이다.
DB하이텍은 지난해 3월 분사 계획을 발표한 당시 "팹리스 부문을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고객사와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DB하이텍의 파운드리 부문에 일감을 주는 팹리스 고객사들이 설계 관련 기밀 자료가 팹리스 부문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해, 이를 불식시키고자 물적분할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와 동시에 2027년 팹리스 부문 매출을 2023년 대비 2배 이상 키우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DB글로벌칩은 주력 사업인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설계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신사업에도 뒤늦게 뛰어들면서 불황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게 됐다. 최근 TV, 스마트폰 등 IT 세트 시장이 침체되면서 이들 제품 디스플레이에 탑재되는 DDI도 업황 부진을 함께 겪고 있다. 또 삼성LSI, LX세미콘 등 경쟁사가 이 시장을 꽉 잡고 있어 신규 물량을 늘리기 힘든 이유도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전력관리반도체(PMIC), 미니 LED 등 혁신 제품 설계에 집중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나, 신생 사업인 만큼 아직 초기 단계에 그친다는 평가다. 시장 한 관계자는 "(DB글로벌칩이) DDI 외 다른 쪽 설계를 하려고 분사한 이유도 있었다"며 "하지만 회로 설계 작업은 그림 그리듯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련 특허나 IP를 갖고 있어야 상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DB하이텍이 인수합병한 골프장 운영 및 부동산 개발업 계열사 디비월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디비월드의 최대주주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DB그룹(33.97%)이었고, 그 뒤를 DB하이텍(18.35%)이 이었다. 하지만 DB하이텍은 지난 7월 494억원, 10월 890억원 등 디비월드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 현재 81.76% 지분율로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주주들 사이에서는 파운드리 회사가 골프장 회사를 안고 가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본업 투자만큼 많은 금액을 이종 사업에 쏟아붓는 것이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당초 DB하이텍은 올해 설비투자 목표액으로 1807억원을 제시했는데, 이것의 76.6% 수준인 1384억원을 디비월드의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는 데 사용했다.
회사는 디비월드 인수 목적을 '신수종사업 진출 및 첨단 반도체 사업 보안 강화'로 공시했다. 그러면서 현재 DB하이텍이 충북 음성군에 조성하고 있는 상우산업단지와, 디비월드가 이곳에서 추진하려는 '미래기술문화특구' 사업을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하지만 시너지가 언제쯤 본격적으로 발현될 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연말 준공될 예정이었던 상우산업단지는 공사가 지연돼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인허가 절차를 밟는 것으로 전해졌다. 디비월드의 미래기술문화특구 사업은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았다. 음성군 현지 관계자는 "미래기술문화특구 사업에 대해 아직 들은 바가 없다. 기업 내부적으로 계획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 같다"며 "사업 규모 자체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물적분할, 인수합병 필요성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돼 회사 내부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이 오갔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디비월드의 경우 DB하이텍과 사업 연관성이 없어 거버넌스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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