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에서]
삼성을 위한 '비정한 대선(大善)'
최악의 사태 막기 위한 용기와 결단력 필요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9일 08시 3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김가영 기자)


[딜사이트 김민기 차장]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


일본 기업 경영의 귀재이자 교세라를 창업한 고(故)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한 말이다. 그는 2010년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부탁으로 77세의 나이에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취임한 후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불과 1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그는 어린아이가 울면서 심한 투정을 부릴 때 달랜다고 응석을 받아주면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으로 자란다며, 마음이 아프더라도 겉으로는 심하게 혼을 내줘야 제대로 된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의미로 이같이 말했다.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삼성그룹도 이나모리 회장의 말을 아로새겨야 한다. 그는 일본항공을 살리기 위해 급여 인상과 같은 선의를 베풀기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선택했다. 삼성도 일시적인 고통을 회피하려다 '대악'에 내몰리지 말고 비정하더라도 과감한 혁신과 조직 개편을 통해 회사를 살리는 '대선'을 이뤄야 한다. 결국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는 '작은 선'이 아니라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최근 위기를 겪고 있다. 30년 넘게 삼성을 다닌 한 임원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위기를 최근에서야 더 많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반도체 기술력에서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경쟁사에게 밀리지 않았던 삼성이 오히려 경쟁사에게 1~2년 기술격차로 뒤쳐졌다는 소식은 위기를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제 삼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정해야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본항공의 45개 적자노선을 폐지하고 1만여명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조직을 바꾸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파산 직전의 JAL을 8개월 만에 흑자로 돌려세우고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낸 후 2013년 3월에 퇴임했다.


그동안 삼성은 사법리스크를 해소하고 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삼성이 되기 위해 소선(小善)을 지향했다. 이재용 회장은 MZ 직원들과의 소통을 늘리고, 매년 4대그룹 중 유일하게 신입사원 공채를 유지했다.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협력사와의 상생, 노조와의 협의, 직원들의 워라벨 등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경영은 오히려 대악(大惡)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경쟁력이 줄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완벽주의는 사라졌고, 이로 인한 불량품은 늘어났다. 본인의 고과를 위해 과장되고 거짓된 보고만 늘었고 결국 이는 투명경영을 막고 '나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낳았다. 기업은 군살 없는 탄탄하고 강건한 몸을 만들어야하지만 매출과 이익을 낳지 못하는 여분의 자산, 팔리지 않는 재고, 과잉설비 등 불필요한 몸집만 늘어났다.


아무리 삼성이 크고 100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인공지능(AI)시대에 빠르게 급변하는 IT 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밀린다면 회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대선을 위해 그동안 조직의 규율을 어기거나 조직의 해를 끼친 임원들에게 채찍이 필요하다.


삼성이 10여년간 신입사원에게 추천한 책은 이나모리 회장의 '왜 일하는가'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은 단순히 생계 유지를 위한 돈벌이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마음을 닦으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교세라는 연구 개발 성공률이 100%에 달했다. 그들은 최고이기 이전에 완벽한 제품을 만들었고, 아무리 고단한 개발 과정을 거쳤어도 완벽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아주 작은 결함도 놓치지 않겠다는 정신, 그것을 알아채는 날카로운 감각, 그게 바로 지금의 삼성이 가져야 할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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