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선주의 부활SK그룹, 정책 협상 능력으로 리스크 뚫는다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재계 서열 2위인 SK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을 앞두고 여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고수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수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복귀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주력사업 중대 변수로 부상한 가운데 SK그룹은 미국 정책 협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 대관(對官)조직을 꾸리는 한편 선제적으로 시나리오별 사업 영향 점검에 들어갔다.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IRA 정책 변화 여부다. 그룹 배터리 계열사인 SK온은 조지아주에 1·2공장을 운영 중이고 내년에는 완성차 포드와 합작한 테네시주와 켄터키주 배터리 공장을 차례로 가동할 예정이다. 이들 생산라인이 모두 가동되면 현지 배터리 생산능력은 184기가와트시(GWh)로 늘어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이 배터리 보조금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온 만큼 보조금 규모가 축소되거나 IRA를 폐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줄곧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비판하며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지원을 철회하고 전통 에너지와 내연기관 자동차 보호 공약을 내세웠다. 이는 배터리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IRA 수혜 규모가 축소될 경우 배터리 수요 둔화로 배터리 업체의 수익성도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배터리 업체의 미국내 생산 비중이 높은데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내연기관차 규제를 완화하면 전기차 수요가 둔화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국내 업계의 미국 고용창출 기여도 등을 트럼프 행정부에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앞으로도 생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국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정책과 공화당 강세 지역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공장이 포진한 만큼 보조금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긴 어렵다는 반박도 나온다. 실제 지난 4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현욱 SK온 IR담당은 "미 대선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지만, IRA에 부정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IRA 전면 폐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완화, 법인세(21→15%) 및 전력요금 인화 등의 공략을 현실화하면 미국에 선점 투자한 국내 기업의 경영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일단 SK온은 IRA 정책 변화에 주시하며 대응방안을 점검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곧바로 IRA 폐지를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에서다. SK온 관계자는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정책 방향성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시나리오별 사업 영향도 및 대응방안 등을 점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도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칩스법 개정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유세 중 반도체 보조금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며 "한국, 대만 기업이 아무 대가 없이 미국에서 공장을 짓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IRA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보조금이 축소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럴 경우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투자 전략을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SK하이닉스가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을 믿고 미국내 반도체 공장 투자를 대거 확정한 상태기 때문이다. 실제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달러(5조4000억원)를 들여 인공지능(AI) 메모리용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했고, 그 대가로 미국 정부로부터 4억5000만달러(6200억원)의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지원받기로 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대중국 통제 강화로 오히려 국내 기업이 수혜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강력한 대중국 수출 통제와 대만 TSMC에 쏠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 기업인 SK하이닉스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는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경 내용 등을 면밀히 살펴본 후 투자 계획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자국 우선주의 기조도 덩달아 강화될 전망에 따라 SK그룹도 통상 정책 변화와 여러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에 SK그룹은 연초 북미 대관 컨트롤타워인 'SK아메리카스'를 신설하고, 유정준 SK온 부회장을 이 회사의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미국의 정책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짚어보고 북미지역 관련 대외협력을 강화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SK아메리카스를 중심으로 미국에 진출한 SK그룹 계열사간의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이 연초 북미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통합 및 강화한 SK아메리카스를 출범하고 선제적으로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대응 노력을 강화해왔다"며 "그룹 차원에서 리스크를 미리 예측하고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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