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VC)은 창업 생태계의 최전선에서 미래 산업의 주축이 될 초기 기업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이 같은 역할을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대표펀드매니저다. 이들은 수년간 쌓은 투자 경험으로 보다 능숙하게, 직관적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처음부터 노련함을 갖춘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시니어 심사역 이전에 주니어 시절이 있었다. 투자 대상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검토해 투자하고 이후 성공과 실패를 수차례 맛보면서 현재의 투자 역량을 갖췄다. 딜사이트는 시니어 심사역들 아래서 실무를 배우며 향후 벤처투자 시장의 얼굴로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 VC 심사역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대학 시절 조직 안에서 '린치핀(linchpin)' 같은 사람이 되자는 모토(moto·좌우명)를 마음속에 새겼다. 벤처캐피탈(VC) 업계에 들어선 배경도 전문성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기 위해 달려온 결과다"
지난 4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신한벤처투자 본사에서 만난 홍원기 부장의 말이다. 린치핀은 마차나 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바퀴 축에 꽂는 핀이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쓰이곤 한다. 그는 현재 회사의 VC 투자본부 VC2부문에 소속해 유망 벤처기업들을 발굴하고 있다. 특히 본인의 관심분야인 게임 산업에서 우수한 투자 역량을 선보이고 있다.
1983년생인 그는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동안 공부한 경영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살리고자 증권사 입사를 준비했다. 2009년 5월 한화투자증권 인턴을 시작으로 KB투자증권(현 KB증권), LIG투자증권(현 케이프투자증권) 등에서 근무하며 금융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중에서도 홍원기 부장이 매력을 느낀 분야는 운용업무였다. 그는 영국 에든버러대학교(The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재무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2014년 1월 하나금융투자(현 하나증권) IPO(기업공개)실에서 투자은행(IB) 업계의 일을 본격 시작했다. 이후 홍 부장은 2020년 7월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로 이직해 현재까지 근속 중이다.
그가 VC 업계에 눈을 돌리게 된 건 개인의 성장 때문이었다. 홍 부장은 "당시 증권사에서의 투자 경험과 VC에서의 투자 경력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경쟁력을 지닐지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아무래도 기업의 IPO 과정에서 위험 부담을 더 많이 지는 VC가 협상력이나 주도성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홍원기 부장은 콘텐츠 분야의 투자 전문성을 자랑하며 회사에서 핵심운용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주요 포트폴리오는 ▲시프트업 ▲슈퍼센트 등이다. 시프트업은 모바일게임 '승리의 여신: 니케'의 흥행을 앞세워 올해 7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지난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총 80억원에 달하는 시프트업의 구주를 매수한 회사는 지금까지 투자금 회수(엑시트)로 125억원을 거둬들였다. 신한벤처투자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시프트업 지분은 30억 수준으로 알려진다.
시프트업 투자를 주도한 홍원기 부장은 투자 결정 요인으로 글로벌 기업으로부터의 인정과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에 대한 믿음을 꼽았다. 홍 부장은 "게임 개발사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건 퍼블리셔(publisher, 배급사)"라면서 "퍼블리셔도 기업의 사업성을 검증한 후 얼마를 투자할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프트업의 투자를 검토할 당시 해당 회사는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이자 글로벌 퍼블리셔인 텐센트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면서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회사를 신뢰할 만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홍 부장은 "김형태 대표가 출시한 게임 중에서 콘텐츠 측면에서 실패한 작품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캐릭터를 세심하게 구현해내는 김 대표의 강점이 2020년부터 급성장한 서브컬처(애니메이션풍) 게임의 유행과 맞물렸던 부분도 기업 성장 과정에서 호재였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하이퍼캐주얼게임사 슈퍼센트 또한 홍원기 부장이 발굴해낸 스타트업이다. 신한벤처투자는 지난해 4월 슈퍼센트가 추진한 16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 유치에서 30억원을 책임졌다. 회사는 해당 포트폴리오에 대한 엑시트로 멀티플 6배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
홍 부장은 "시프트업은 콘텐츠 경쟁력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 기업이라면 슈퍼센트는 광고 역량을 높이 평가한 업체"라고 전했다. 그는 "게임 투자가 어려운 이유는 프로젝트성 투자이기 때문"이라면서 "보통 기업의 경우 사업을 확장할수록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 게 당연한데 게임 산업은 흥행 여부에 따라 실적 편차가 크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하이퍼캐주얼게임은 광고를 통해 유기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홍원기 부장은 "특히 '우리는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다시 도전한다'는 공준식 슈퍼센트 대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이런 도전 정신이 해당 사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최근 들어 눈여겨 보고 있는 분야는 방산 업체다. 홍 부장은 "투자업계가 활황기를 맞이했던 입사 초기와 달리 요즘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안정적인 매출을 내는 방산기업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그는 "방산 기업들은 대부분 장기간 들어가는 원가를 추정해서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만큼 투자 위험이 크다"면서 "기업이 내부 통제를 잘 하고 있는지, 과거 실패 경험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검토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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