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복현 금감원장께 보내는 서신
금융당국, 위법성 없는 기업 사업재편 자의적 판단은 과욕
이 기사는 2024년 09월 19일 08시 1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호정 산업1부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님 안녕하세요. 불볕더위 속 공사다망 한 행보를 이어가고 계신데 건강은 잘 챙기고 계신지 사뭇 염려됩니다. 뜬금없이 안부인사를 올린 건 몇달째 원장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두산그룹에 대해 몇 마디 의견을 전달하면 조금이나마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원장님도 알다시피 두산그룹은 국내 최초의 기업이자 가장 오래 명맥을 지키고 있는 가족회사입니다. 박승직 창업주가 1896년 서울 종로4가에 본인의 이름을 건 포목상을 연 것이 두산그룹의 시발점이니 어느덧 128년이나 됐네요. 그 사이 두산그룹은 참 다사다난 했습니다. 생각나는 것만 해도 ▲박가분 납 성분 함유 논란 ▲낙동강 폐놀 유출사건 ▲형제의 난 등 셀 수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두산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부터 상시적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2020년만 해도 유동성 위기에 빠져 정부에 긴급자금 요청을 했고, 2022년에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1조2000억원대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았습니다.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막은 일등공신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라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은 일반주주들이었던 셈이죠.


이러한 측면에서 원장님이 두산그룹의 사업재편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이유를 십분공감 합니다. 정부와 주주들의 지원으로 살아남은 두산그룹이 경영효율성을 명분삼아 주주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는 사업재편을 한다니 누군가는 한번쯤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다만 원장님이 금융감독 업무와 상관없는 뜨거운 이슈마다 강한 목소리를 내고 계시다 보니 두산그룹의 증권신고서에 대한 무한 반려 입장에도 묘한 기시감이 듭니다. 두산그룹이 내놓은 사업재편 계획이 관련법에 의거해 산출된 것임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없으면 지속적으로 정정요구를 하겠다"라는 으름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두산그룹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성과와 무관하게 수익가치로만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간 거래할 경우 10% 이내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이 가능하니까요. 게다가 두산밥캣의 가치를 현금흐름할인법 및 배당할인법 등을 활용해 끌어올릴 수도 있으니 원장님 입장에서는 이 회사 주주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두산그룹의 상황을 고려하면 지난달 내놓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 철회 이상의 묘수를 찾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울러 이번 사업재편 계획을 두산그룹이 백지화 하지 않는 한 3사(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주주 누구도 쾌재를 부를 수 없다는 걸 원장님도 알고 계실겁니다.


지금은 두산밥캣 주주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지만, 이를 잠재우기 위해 이 회사의 가치를 할증하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주주들의 뒷말이 나올 게 뻔합니다. 돈 버는 회사를 떼 주는 게 속쓰린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당초보다 낮은 결과물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고, 두산로보틱스 주주들은 자신의 지분가치를 할인해 줄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이번 두산그룹 논란은 이 회사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큽니다. 다만 두산그룹이 사업재편 카드를 꺼내든 속내는 원장님도 파악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위 재벌이라 불리는 그룹들의 과감한 도전과 리스크테이킹이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만든 원동력이 되고 있으니까요. 이를 감안하면 두산그룹의 로봇 사업 투자를 위한 사업재편 역시 훗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결실이 되지 않을까요.


원장님, 위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금융당국의 자의적 판단으로 기업의 사업재편을 막겠다는 발상은 위험한 과욕입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이 있듯 검찰 출신인 원장님의 냉철한 판단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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