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호창 부국장] SK그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해 '뉴 SK이노베이션' 출범을 목전에 두게 됐다.
오는 11월 합병이 마무리되면 SK이노베이션은 자산 105조원, 매출 88조원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게 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간 에너지 기업 중 최대 규모다. SK그룹은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로만 2030년 기준 2조2000억원 이상의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을 창출해 전체 20조원의 에비타를 달성할 것이라며 합병의 필요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합병 효과에 대한 수식어들이 화려하지만 이를 걷어내고 실체를 보면, 목적이 재무적 위기에 놓인 'SK온' 구하기에 있음은 자본시장의 상식이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로 2021년 10월 출범한 배터리 제조사 SK온은 올해까지 2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에도 올 상반기까지 3조원 이상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설립 후 11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 이어지며, 자력으로 설비투자비(CAPEX)를 감당하지 못해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곳간을 비게 만든 주인공이다.
결국 이노베이션만으론 한계를 느낀 SK그룹은 안정적 현금창출력을 보유한 E&S를 붙여 SK온에 대한 지원력을 높이는 카드를 꺼냈고, 이것이 이번 합병의 배경이다. 배터리 시장의 수요 정체로 외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자 고육책이다.
문제는 이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냉정히 보면 '미봉책'에 가깝다.
지금의 전략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둔화)이 해소돼 SK온이 수익을 내기까지 버틸 시간을 마련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만약 SK온이 흑자 구조로 전환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E&S를 흡수한 '뉴 이노베이션'도 다시 합병 전과 같은 상황을 마주할지 모른다.
확보한 시간이 그리 길어 보이지도 않는다. E&S 사업의 한 축인 도시가스 사업이 2026년 11월이면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SK E&S에 3조1350억원을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투자한 KKR은 내부수익률(IRR) 기준 9.9%의 수익 또는 E&S의 도시가스 자회사 7곳의 지분을 넘겨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때까지 SK온이 제대로 수익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SK그룹은 4조원이 넘는 현금을 KKR에 지불하는 대신, 도시가스 자회사 지분으로 현물 상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뉴 이노베이션'의 현금창출력과 재무 역량이 적지 않게 감소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2년 안에 SK온의 상황을 반전시킬 후속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배터리 시장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식 대응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노베이션과 E&S의 합병보다 그 이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