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더리 펀드의 전성기유니콘 플랫폼의 배신…엑시트 고민
국내 벤처캐피탈(VC)의 투자금 운용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만기가 임박해 투자금 회수가 절실한 펀드는 쌓여가는데 시장 침체로 기업공개(IPO)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VC들에게 펀드의 지분이나 포트폴리오 구주를 인수해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이른바 '세컨더리 펀드'가 단비가 되고 있다.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금 소진 속도가 1년 내외로 빨라질 정도다. 딜사이트는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세컨더리 시장의 현황을 알아보고 업계에서 구사하는 전략과 한계점을 살펴본다.
[딜사이트 김호연 기자] 코로나19 펜데믹을 틈타 플랫폼 기업에 투자를 진행했던 투자사들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던 투자활황기 시절 높게 책정한 기업가치가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투자한 플랫폼 기업의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지며 투자금을 온전히 회수(엑시트)하기 어려워져서다.
특히 조 단위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던 플랫폼 기업들은 기업가치의 낙폭이 크다. 엑시트까지 다소 시간이 남아있음에도 실적 회복이 쉽지 않아 뒤늦게 투자한 회사들의 손실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투자유치 과정에서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 받은 플랫폼 스타트업은 컬리다. 2021년 말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1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가 4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 38커뮤니케이션 등에 따르면 기업가치가 5000억원대로 곤두박질 쳤다. 티몬과 위메프 등 커머스 기업이 대금 미정산 사태로 커머스 업계 전체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다 쿠팡과 SSG닷컴 등 동종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컬리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5392억원으로 전년동기(5096억원) 대비 5.8% 증가했다. 영업적자는 지난해 1분기 305억원에서 올해 1분기 2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별도 기준 영업이익 5억원으로 창사 9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이 여전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며 기업가치는 약 3개월 만에 6300억원에서 1300억원이 추가로 떨어졌다.
회사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컬리에 투자한 국내 투자사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DSC인베스트먼트는 2015년 시드와 2017년 시리즈B로 총 40억원을 컬리에 투자했다. 총 4개의 펀드를 동원했는데 이 중 'DSC Follow-on 성장사다리펀드'는 오는 12월 만기가 도래한다.
다른 펀드인 'DSC드림제3호청년창업투자조합'는 이미 엑시트를 마친 상태다. 남은 투자금 회수를 앞두고 만기 연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투자환경 악화로 기업가치가 더욱 떨어지면서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직방은 2022년 6월 IMM인베스트먼트와 산업은행, 신한벤처투자, 블랙펄벤처스가 1500억원을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2조4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2019년 시리즈D 투자 당시 7150억원이던 기업가치가 3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IMM인베스트먼트와 산업은행은 당시 직방에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로 1020억원을 투자했다. 각각 400억원을 내놓았고 산업은행이 민간출자사와 매칭투자를 진행하며 200억원을 추가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신한벤처투자가 과거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고 있던 구주 100억원을 인수하며 투자자 대열에 합류했다. 블랙펄벤처스 역시 직방의 구주 35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하지만 직방의 기업가치는 회사의 영업손실이 쌓이며 수직낙하했다. 지난해 말 회사의 연결 매출액은 1200억원으로 전년(883억원) 대비 35.9%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은 같은 기간 371억원에서 380억원으로 오히려 확대됐다. 2021년 82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 뒤 3년째 적자다.
일각에선 적자 경영의 장기화로 올해 안에 기업가치가 4000억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을 정도다. VC들은 업계에 이러한 우려가 퍼지며 앞다퉈 구주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매물은 소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종의 세컨더리 투자로 직방 구주를 사들인 신한벤처투자는 지난해 인수한 100억원 규모의 주식 중 70억원어치를 처분했을 뿐이다.
'리디북스'로 시장의 주목을 받은 전자책 플랫폼 기업 리디는 직방과 비슷한 시기 1조6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 이미 2021년 싱가포르투자청, 산업은행, 엔베스터, 에이티넘파트너스로부터 프리IPO로 3000억원을 투자 받았다. 이듬해 싱가포르투자청, 산업은행, 엔베스터,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200억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을 정도로 주목 받았다.
지난해 매출액은 2196억원으로 전년 대비(2211억원) 0.7% 감소했고 2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회사의 기업가치는 1조6000억원에서 최근 5000억원까지 60% 이상 감소한 상태다.
시장에선 유니콘으로 평가받던 플랫폼 기업의 가치 급락에 대해 시장 환경이 척박해진 탓도 있지만 애초에 유동성 장세에서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뚜렷한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업황이 급변하면서 가치 회복이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형의 사업 아이템이 없다보니 수익이 제대로 나기도 전에 대중의 소비트렌드가 변하며 기업가치 재고에 애를 먹고 있다"며 "투자한 회사들 역시 엑시트하려면 손실을 감수해야 해 만기를 연장하며 버티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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