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을 이끈 등소평(덩샤오핑)의 유명한 지론 중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란 말이 있다. '검정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의미로 진영에 상관없이 능력을 가장 우선하겠다는 뜻이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혼란을 겪던 시기로 정치, 사회적인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격자 내부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실리를 챙기기 위한 정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근 신세계그룹에도 위기가 커지면서 실적을 높일 '고양이'가 필요한 상황이다. 주력인 유통군 부진과 신세계건설에서 터져 나온 유동성 악화 등 많은 위기가 겹쳤다. 올해 3월 총괄회장에 오른 정용진 부회장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해 사업개편과 과감한 수장교체들을 단행했다. 모든 인사와 보상은 철저하게 성과에 기반해야하고 성과를 내지 못한 조직과 임직원에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신상필벌'을 예고했다.
취임 직후 성과가 낮은 계열사인 신세계건설의 정두영 대표를 경질하고 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를 통합하며 조직슬림화를 추진해왔다. 최근에도 정 회장은 다시 칼을 빼들었고 이인영 SSG닷컴(쓱닷컴)대표를 단독대표가 된 지 9개월만에 경질했다.
SSG닷컴은 지속된 실적 악화로 지난해 매출은 1조6784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SSG닷컴이 2018년 이마트의 온라인 쇼핑몰 사업무문이 물적분할돼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한 수치다. 재무적 투자자(FI)들과 풋옵션 행사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은 점도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 SSG닷컴은 2019년과 2022년에 걸쳐 홍콩계 사모펀드(PE)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BRV캐피탈매니지먼트에게 총 1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SSG닷컴은 올해 4월말까지 약속한 거래액(GMV) 5조 1600억원 달성 여부를 놓고 FI들과 공방을 벌였다. 결국 신세계그룹이 FI가 보유한 지분 전량을 제3자에게 매도하기로 하면서 공방은 일단락됐으나 조속히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에선 아쉬운 평가가 나왔다.
풋옵션 이슈와 실적악화 등이 지속되자 정 회장은 신세계그룹 이커머스 양대 계열인 G마켓과 SSG닷컴에 신임 대표를 선임하며 진화에 나섰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G마켓의 신임 대표가 이커머스 경쟁사인 알리바바코리아 총괄했던 인사라는 점이다. 정형권 신임 대표(부사장)는 알비바바코리아 총괄 겸 알리페이 유럽·중동·코리아 대표로 지냈다. 신세계그룹은 정 신임 대표가 투자, 이커머스, 핀테크 업계를 두루 거친 재무 전문가로서 G마켓의 체질개선에 큰 보탬이 되길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구원투수로 외부 경쟁사 출신을 대표 자리에 앉힐 만큼 신세계 그룹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으로 체감된다. 정 회장은 경영개선을 위해서라면 '흑묘백묘론'과 같은 파격적인 인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정 회장 역시 신세계그룹을 위기에서 구해낸다면 흑묘든 백묘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필요한 셈이다.
정 회장 역시 본인이 결정을 내린 인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위기를 빨리 탈출하기 위해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만큼 이번 신임된 임원들과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가 관건이다. 정용진의 쥐를 잘 잡는 고양이 활용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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