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박안나 기자] HL D&I 한라가 600억원 규모 공모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회사채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신용등급 BBB급 건설사인 HL D&I 한라가 충분한 수요를 끌어 모으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HL D&I 한라는 KDB산업은행을 인수단으로 확보한 덕분에 미매각 우려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HL D&I 한라는 공모 회사채를 발행해 600억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12일 수요예측을 거친 뒤 20일 발행 예정이다.
앞서 2월 HL D&I 한라는 7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수요예측에서 단 1건의 주문도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건설사들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우발채무 리스크가 부각됐고, 채권시장에서 건설채 투자수요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와 같은 시장 여건 탓에 HL D&I 한라의 공모채는 전액 미매각이라는 오명을 썼다.
HL D&I 한라는 이번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로부터 'BBB+' 신용등급을 부여받았다. 회사채시장에서는 AA급 이상의 채권에 수요가 쏠리는 차별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건설채 비선호 현상까지 겹친 탓에 BBB급 건설사인 HL D&I 한라에게 불리한 조달환경이 형성돼 있다. 다만 산업은행이 공모 회사채 600억원 가운데 350억원을 인수하기로 한 덕분에 미매각 우려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최근 'A' 신용등급의 GS건설 마저도 1000억원 발행에 280억원을 모으는 데 그치며, 건설채를 향한 채권시장의 온도가 더욱 냉랭해진 모양새다. AA급 우량신용도를 지닌 DL이앤씨는 이달로 예정해뒀던 회사채 발행 계획을 다음 달로 미뤘는데, 미매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3월 말 기준 HL D&I 한라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499억원,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성 차입금 규모는 5975억원로 집계됐다. 현금성 자산 규모는 단기성차입금의 25% 정도에 그친다.
올해 하반기 예정된 회사채 만기 일정만 살펴봐도 ▲8월 30억원 ▲10월 100억원 ▲11월 542억원 등 모두 672억원이다. 보유 현금의 절반가량을 회사채 상환에 투입해야 한다. 현금상환에 나서기엔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HL D&I로서는 외부 자금 조달이 필수인 상황이다.
신용등급별 수요 양극화 현상에 더해 건설채 투자수요 위축이 더욱 심화된 탓에, HL D&I 한라가 앞선 2월과 달리 회사채 완판 등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이와 같은 시장 상황을 반영하듯 HL D&I 한라와 같은 BBB급 기업이 공모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사례는 4월25일 한진(BBB+)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미매각 우려가 높은 공모 대신 사모조달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HL D&I 한라 역시 미매각에 따른 평판 훼손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사모발행 등 방안이 더욱 합리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HL D&I 한라가 회사채, 기업어음 등 채무증권을 발행해 조달한 3142억원 가운데 공모조달 금액은 2월 발행한 회사채 500억원이 전부였다. 당시 산업은행이 전체 발행 규모의 90%에 이르는 400억원을 인수해준 덕분에 HL D&I 한라는 회사채 완판에 성공할 수 있었다.
IB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의 차환발행 물량을 상당 부분 인수해 유동성 공급을 지원한다"며 "HL D&I한라가 차환 부담을 지고 있지만 산업은행 덕분에 미매각 우려를 낮출 수 있는 안전망을 확보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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