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주매출, 변화가 필요한 때
변동성 큰 시기, 투자자·기업 모두 만족할 수 있어야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7일 08시 1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ipo. (출처=FREEPIK)


[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사업하면서 빚을 졌습니다. 채무변제와 함께 남은 돈으로 아파트 한 채 구매할 예정입니다."


기업공개(IPO) 간담회 자리에서 구주매출 자금 사용처를 물었을 때 들은 한 업체 대표의 답변이다. 반도체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이 업체는 총 공모주식의 약 30%를 구주매출로 내놨다. 비록 회사는 공모흥행에 실패했으나 업체 대표는 30억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거머쥐었다.


구주매출은 상장 과정에서 기존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파는 것을 말한다. 공모 자금이 회사 성장에 쓰이는 신주발행과 달리 기존주주 주머니로 흘러간다. 주식을 미리 처분하는 게 상장 후 회사 성장에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돼 투자 매력도를 반감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IPO 흥행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로 지목된다.


올해도 구주매출 규모가 큰 기업은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총 공모주식의 47.68%를 구주매출로 내놓은 넥스틸은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기관 수요예측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구주매출 100%로 공모구조를 설계한 서울보증보험도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물론, 구주매출이 부정적인 요소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비상장기업에 투자한 재무적투자자(FI)에게는 유용한 투자금 회수(엑시트) 창구가 되기도 한다. FI 지분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구주매출로 일부 지분을 매각한 뒤 상장 후 잔여 지분을 처분하면 주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이슈'도 해소할 수 있다.


IPO 업무를 주관하는 증권사도 부담을 덜 수 있다. 최대주주 보유지분이 많은 기업은 코스닥시장 상장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일반 주주 비중을 일정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 대규모 신주발행에 나설 시 오버행 이슈가 우려될 수 있다. 구주매출을 활용하면 손쉽게 지분율을 낮출 수 있어 공모구조 설계가 훨씬 수월해진다.


이 같은 순기능에도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증시상장 문턱은 높을 전망이다. FI를 제외한 대다수 구주매출 주체가 목적과 자금 사용처를 뚜렷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설명회(IR) 과정에서 투자자를 이해시킬만한 만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구주매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구주매출을 하려는 기업들은 잇속만 챙기기보다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명확한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투자자들 역시 공모 구조상 불가피하게 구주매출이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기존과 다른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올해 IPO 시장은 유달리 변동성이 크다. 투자자와 기업이 서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적당한 양보가 필요한 때다. 선례는 있다. 앞서 상장한 퓨릿과 필에너지의 경우 유입 자금 중 일부를 배당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두 기업의 구주매출 비중이 30%대에 육박했으나 시장은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선례가 있으면 다음은 어렵지 않다. 확실한 명분만 있다면 투자자들은 구주매출에 대한 인식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 현재 디에스단석(옛 단석산업) 등 기업이 구주매출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투자자가 받아들일 만한 사유를 제시해 구주매출이 더 이상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를 가리는 장애물이 되지 않길 바란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
기자수첩 919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