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국내 연구진이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의 원인이 되는 뇌 속 노폐물의 숨겨진 배출 경로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코안으로 림프관 생성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전달해 노화된 뇌의 청소 기능을 젊은 시절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 고규영 단장 연구팀은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뇌척수액이 뇌막을 통과해 배출되는 핵심 경로를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학술지 '셀(Cell)'에 22일 0시(한국시간) 온라인 게재됐다.
뇌는 활발한 대사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노폐물을 만들어낸다. 이 노폐물은 뇌척수액에 실려 뇌 밖으로 배출된다. 이러한 '뇌 청소'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아밀로이드 베타 등 신경독성 단백질이 축적돼 치매를 비롯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뇌척수액이 어떻게 질긴 뇌막 중 하나인 '지주막'을 뚫고 바깥층 림프관으로 빠져나가는지는 250여년간 풀리지 않은 과학계의 난제였다. 연구팀은 특수 형광 표지 생쥐와 첨단 3차원 입체 영상 기술을 활용해 후각망울(코와 뇌 경계 부위) 주변 지주막에서 미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이를 '지주막 소창(Arachnoid fenestrations)'이라 명명했다. 평균 직경 4.5마이크로미터(㎛)인 이 구멍을 통해 뇌척수액이 빠져나와 뇌막 림프관과 코안 림프관을 거쳐 목 림프절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나이가 들수록 뇌 청소 기능이 떨어지는 원인도 명확해졌다. 연구팀이 늙은 생쥐를 관찰한 결과,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지주막 소창의 크기와 개수가 줄어들고 주변 림프관 및 사골판 통로가 좁아지면서 뇌척수액 배출이 크게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의 실마리 역시 함께 제시됐다. 노화된 생쥐의 코안 점막에 림프관 생성을 촉진하는 'VEGF-C' 유전자를 투여했다. 그러자 코 내부와 후각망울 주변의 림프관이 다시 넓어지며 뇌척수액 배출 기능이 젊은 생쥐 수준으로 회복되는 결과가 확인됐다. 이는 외과적 수술 없이 코를 통한 비침습적 투여 방식만으로도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된 것이다.
고규영 IBS 단장은 "이번 연구는 약 250년 전 뇌막 림프관이 처음 발견된 이후 오랜 난제였던 뇌척수액의 지주막 통과 경로를 명료하게 밝힌 이정표적 성과"라며 "뇌 노폐물 배출의 시작점부터 통합적인 연결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연구를 주도한 홍선표 연구위원은 "영장류에서도 동일한 지주막 소창 구조를 확인해 사람의 뇌 청소 기전을 밝힐 핵심 단서를 확보했다"며 "앞으로 인체 조직 연구로 확장해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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