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정은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5년을 맞아 현재 산업안전 정책이 '처벌 중심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후 제재에 머무르기보다 위험을 '인지–이해–실행' 단계로 체계화한 국가 차원의 예방 인프라를 구축해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대진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 감사 겸 노무사는 자본시장 전문 미디어 딜사이트가 14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현실과 합리적 개선 방안' 포럼에서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처벌에서 예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방안'을 발표했다.
조 감사는 현행 처벌 중심 체계만으로는 중대재해 감소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 시행 이후 기업의 안전경영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연도별 사망자 감소 등 실질적 변화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처벌 중심 구조가 일정 수준의 억제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사고 감소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대재해 1건이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며, 중소기업에는 더 큰 충격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간 역할 구분도 불명확해 현장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책임자 책임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적 부담은 커졌지만 수사·재판 장기화와 낮은 실형 비율 등으로 제도 신뢰성과 효율성 문제도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위험 인식을 조직 전반에 내재화하고 실행 가능한 관리체계로 연결하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처벌 중심에서 예방 인프라 중심으로의 전환이며, 처벌은 기본 틀로 유지하되 예방 시스템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 감사는 위험 예방을 위해 '인지–이해–실행'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전 관련 법과 의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과 현장 적용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예방 중심 접근이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는 처벌보다 교육과 단계적 안전 시스템을 통해 산업재해를 줄여왔으며, CEO 교육과 위험성 평가, 단계별 인증 체계를 제도화해 지난 18년간 산업재해 사망률을 약 75%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코아, 듀폰 등 글로벌 기업도 긍정 강화 기반의 안전문화 정착을 통해 사고율을 크게 낮춘 사례로 꼽힌다.
이를 바탕으로 조 감사는 싱가포르 모델을 적용한 한국형 5단계 안전 점진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1단계 CEO 워크숍을 통한 안전경영 의지 공식화 ▲2단계 위험관리 책임자 지정 및 교육 ▲3단계 전 작업 위험성 평가 수행 및 제출 ▲4단계 산업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운영 ▲5단계 외부 심사 기반 인증 단계로 구성된다.
또한 안전관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뿐 아니라 시장 메커니즘과 연계한 인센티브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업 설립 단계부터 안전교육을 의무화하고, 금융권 대출 심사에 위험성 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등 안전을 경영 구조 안에 내재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단순 규제 중심 방식만으로는 현장 변화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경제적 유인을 병행 설계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안전보건공단·산재보험 체계·조달청 공공입찰 시스템 등을 연계해 기업의 자율적 안전관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맞춤형 안전 컨설팅과 교육 관련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토대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며 "이제는 그 기반 위에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일상적으로 안전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방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규제의 객체였던 사업주를 예방의 주체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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