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이 최근 재무개선을 목표로 리밸런싱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해킹사태 등 일부 악재가 발생하면서 경영환경에 먹구름이 꼈다. 계열사 정리 등 운영개선을 통해 내실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수년간 그룹사 전반에 퍼진 재무 리스크는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있다. 주력 사업서 실적 반등이 뒤따라야 하지만, 캐즘현상 등 대외환경 악화로 올 하반기 사업 전망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공지능(AI)·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를 향한 대규모 투자가 임박하면서 재무체력 강화가 시급한 상황 속, 주요 그룹사들의 재무·사업적 과제 전반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SK스퀘어가 올해 무리한 반도체 빅딜 대신 재무 여력 확대에 주력한다.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기조 아래, 외연 확장보다는 내실 강화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일부 저수익 계열사들은 매각·합병 정체로 각자도생에 나선 형국인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대규모 투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다만 SK하이닉스의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시급한 과제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리밸런싱 기조에 매몰돼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기회를 놓칠 수 있어 신규 투자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이뤄져야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올해 '조 단위 빅딜' 대신 '소규모 기술기업 투자'로 경영 기조를 선회하고, 저수익 포트폴리오 재편에 집중키로 했다.
SK스퀘어 내부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회사 내부선 연내 조 단위 빅딜에 나서고 싶어 하지만 11번가 매각 난항 등 영향으로 자금확보 계획이 온전히 가동되지 않으면서 현금유출에 대해 신중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며 "올해 미국·일본 기술기업 투자 일부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후속 계획은 없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저수익 정보통신기술(ICT) 계열사들의 매각·합병 움직임이 일부 정체 됐기 때문이다. 조 단위 투자를 부담없이 진행키 위해선 비핵심자산 유동화를 통해 투자여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
특히 11번가는 2023년 기업공개(IPO)에 실패한 뒤 SK스퀘어 측에서 콜옵션을 거부하며 재무적투자자(FI) 주도로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해 이커머스 업체인 오아시스가 주식스왑 방식으로 11번가 인수를 적극 추진했지만, 현금납입을 원한 11번가 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매각 절차 전반이 난항에 빠졌다. 앞서 박성하 전 SK스퀘어 대표가 해임된 배경에 11번가 이슈가 자리하고 있다는 추측이 우세한 점을 고려하면, 후임인 한명진 대표로선 당장 조 단위 빅딜보다 오랜 11번가 이슈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셈이다.
OTT 계열사인 웨이브 역시 티빙과의 합병 논의가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서 양사 결합을 조건부 승인한 뒤 합병에 한층 속도가 붙었지만, 양사 주주 전원이 동의해야 하는 걸림돌이 남아있다. 앞서 티빙 주요주주인 KT 측은 이번 합병에 대해 '티빙 주주 가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란 입장을 내놓은 만큼, 추후 주주간 합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상존한다.
이 밖에 인크로스·원스토어 등 ICT 계열사 대부분서 경영 효율화 등으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수익 개선으로 실적 기여도를 극대화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 계열사는 SK스퀘어 포트폴리오 내 차지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라 실적 개선 여부과 관계없이 추후 리밸런싱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이처럼 포트폴리오 전반에 대한 리밸런싱 움직임이 장기화되면서, 대규모 투자 등 외연 확장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SK스퀘어가 AI·반도체 신규투자 특명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그룹 차원서도 뼈 아픈 상황이다. 앞서 SK그룹은 2028년까지 103조원을 반도체 부문에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SK스퀘어도 무차입 경영을 기반으로 배당수익 및 자산유동화를 앞세워 2027년까지 3조원의 투자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최근 계열사 매각·합병 절차가 정체되면서 투자여력 확보도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
이 회사의 올 1분기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1조35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 늘었지만, 조 단위 빅딜을 부담없이 단행키 위해선 재무여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리밸런싱을 진두지휘 중인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특히 SK스퀘어 중점사업과 포트폴리오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며 "SK스퀘어 포트폴리오 중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대부분 계열사들은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만큼 리밸런싱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SK스퀘어가 그룹 성장동력 중 하나인 반도체 투자를 담당 중인 만큼 재무여력 확대에 한층 힘써야하는 상황"이라며 "조 단위 빅딜을 고려 중인 만큼 계열사 매각 등 큼직한 딜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선 'SK스퀘어가 그룹 리밸런싱 기조에 매몰돼 포트폴리오 다각화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SK스퀘어 설립 이후 상승세를 이어온 'SK하이닉스 의존도'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SK스퀘어의 순자산가치 중 80%를 차지하고 배당수익의 98%가량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다. 최근 SK하이닉스의 고공 성장이 이어지면서, SK스퀘어는 1분기 기준 지분법손익(1조6848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334.9%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이 국내외 정세에 민감하고, 산업 사이클도 주기적인 점을 고려하면 안심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실제 올 2월 SK하이닉스는 단기차익 실현 매물이 늘고 엔비디아 등 해외증시 영향이 더해지면서 회사 주가가 8% 가까이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SK스퀘어 주가 역시 10%에 육박하는 낙폭을 보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호황이 이어져도 언제 또 다시 불황이 들이닥칠 지 모르는 게 반도체 산업"이라며 "공급망 전반이 글로벌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타 산업군 대비 또렷한 산업 사이클도 존재해 실적 변동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조 단위 투자까진 아니더라도, AI 부문 등서 유의미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이뤄내 SK하이닉스 의존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며 "다각화 시점이 늦춰질수록 시장 내 유망기업을 놓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SK스퀘어는 올해 미국 및 일본 AI·반도체 기술기업 일부를 대상으로 200억원을 투자한 뒤 이렇다할 신규투자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 회사는 올해 비핵심 자산 유동화 범위를 한층 확대하는 동시에, 밸류업이 가능한 곳은 손익을 개선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투자 여력을 쌓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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