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권 초기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향후 정책 소통 과정에서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해 말 NH농협금융지주가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을 진행하던 시점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당시 농협금융 내부에서는 김 실장 선임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막판에 이찬우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낙점되면서 판이 뒤집혔다.
농협금융을 포함한 금융 계열사 인사에 농협중앙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상 강 회장이 김용범 실장이 아닌 이찬우 회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지분 100%를 보유한 단일주주 형태인 탓이다. 회장 선임과 함께 이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데 단일주주이자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농협금융 회장 선임에 앞서 이뤄진 계열사 인사에서 강 회장과 지역적으로 접점이 있는 인물이 대거 발탁됐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더했다. 강 회장이 농협금융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찬우 회장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찬우 회장은 경북 영덕 출신으로 경남 합천 출신인 강 회장과 접점이 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우 회장은 2020년 5월 김 전 경남지사 임기 때 경상남도청 경제혁신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김용범 실장은 전남 무안 출신이다.
게다가 역량만 놓고 보면 정책 전문성이나 금융당국과 소통 등의 측면에서 김용범 실장의 강점이 더 크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이찬우 회장은 행정고시 31회로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낸 후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다. 김용범 실장은 행정고시 30기로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지낸 뒤 기획재정부 1차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말 농협금융 계열사 CEO 인사가 마무리된 뒤 금융권에서는 강 회장의 조직 장악력이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새로 사장단에 합류한 인사 6명 가운데 3명이 경상도 출신이었다. 핵심 계열사를 이끄는 강태영 농협은행장은 강 회장의 최측근으로도 꼽힌다.
지주 회장 인선으로 새 정부 핵심 인사와 '첫 단추'가 어긋난 만큼 향후 농협중앙회와 정부 사이 정책 조율에도 예기치 않은 긴장감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농협중앙회는 정부의 농업 지원 정책을 실행하는 핵심 창구로 정부와 신뢰 유지가 중요하다. 만약 농협중앙회장과 정부 사이 신뢰가 흔들릴 경우 정책 집행에서 농협 관련 정책이 뒤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농협금융 회장에서 김용범 실장을 배제했던 선택이 강 회장의 리더십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NH투자증권 사장 선임을 두고 이석준 전 농협금융 회장과 갈등을 빚었던 사례와 맞물리면서 인사권 행사와 관련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지난해 3월 NH투자증권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농협중앙회 인사를 추천했지만 이석준 전 회장은 현 윤병운 사장 선임을 고수해 갈등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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