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심두보 기자] 미국 ETF 시장이 거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ETF의 수가 단기간 내 수천 개 폭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준비하고 있는 제도 때문이다. SEC는 기존 뮤추얼 펀드(공모펀드) 운용사들이 자신들의 펀드에 ETF 공유 클래스(share class)를 추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TF 공유 클래스란 하나의 펀드 안에서 'ETF처럼 거래되는 주식'과 '기존 뮤추얼펀드처럼 매매되는 주식'이 함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SEC는 50개 이상의 자산운용사들이 제출한 ETF 공유 클래스 도입 신청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자산운용사에는 디멘셔널 펀드 어드바이저스(Dimensional Fund Advisors), F/m 인베스트먼츠(F/m Investments), 블랙록(BlackRock), 피델리티(Fidelity), 찰스슈왑(Charles Schwab) 등이 포함되어 있다.
▲뱅가드에게만 허용됐던 구조…업계 전반으로 확장
자산운용사들은 ETF와 뮤추얼펀드를 엄격히 분리해야 하는 규정을 준수해 왔다. 다만 뱅가드만 ETF 공유 클래스 구조를 예외적으로 활용해왔다. 뱅가드는 2001년 SEC로부터 특별허가(exemptive relief)를 받은 바 있다. 당시 ETF는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SEC는 제한적으로 허가했었다. 또 뱅가드는 이 구조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는 2023년 5월 만료됐다.
뱅가드의 주요 뮤추얼 펀드와 ETF는 ETF 공유 클래스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ETF에는 Total Stock Market ETF(VTI), S&P 500 ETF(VOO), Total International Stock ETF(VXUS), Total Bond Market ETF(BND), Dividend Appreciation ETF(VIG) 등이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뮤추얼 펀드가 모두 존재한다.
SEC의 최근 움직임은 뱅가드가 누려왔던 ETF 공유 클래스를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장기 과제로 여겨졌던 이 제도 변화가 최근 몇 달 사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SEC의 마크 우예다(Mark Uyeda) 위원은 지난 3월 이 사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라고 내부에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3월 31일, 디멘셔널 펀드 어드바이저스는 SEC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후 다수의 운용사들이 이를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수정을 가했다.
이 같은 제도상의 변화는 연내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실제 ETF 공유 클래스가 작동하기 위해선 각 펀드의 이사회 승인, 유통 채널 정비, 브로커 및 거래소 등의 시스템 연동 등의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 상장되어 있는 ETF의 개수는 4000개가 넘는다. 일부 전문가는 ETF 공유 클래스가 허용되면, 단기간 내 이 개수가 7000개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미국에서의 ETF 공유 클래스 도입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규모 확대와 상품 다양화로 이어져 한국 운용사들과의 경쟁도 한층 심화될 수 있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의 경우 투자 가능한 ETF의 다양성이 크게 확대된다. 다만 상품이 너무 많아지면 정보 과부하와 선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국내 ETF 시장도 최근 상품 수가 폭증해 ETF의 개수가 900개를 넘어섰지만, 순자산이 50억 원 미만인 이른바 좀비 ETF의 수도 크게 증가했다.
미국에서의 변화가 국내 제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국내 자본시장법상 뮤추얼펀드와 ETF 간 전환이나 공유 클래스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펀드를 ETF로 바꾸려면 청산 후 신설하거나 ETF를 별도 출시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뮤추얼펀드의 ETF 전환이 대규모로 이루어질 경우, 국내에서도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유사한 제도 개선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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