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 발표를 계기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분할을 두고 시장에서는 예상된 수순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재편 움직임과 연결 짓는 시각이 제기된다. 자연스레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로도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23일 금융권과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삼성생명 주가가 갑작스레 상승한 데에는 삼성바이오로직의 인적분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생명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서 핵심 계열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전 단계로도 해석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활용해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도 한층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기타 계열사'로 정리할 수 있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65%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이 늘어나면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도 높아진다.
삼성생명도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확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8.5%를 보유하고 있고 다시 삼성생명 지분은 이 회장과 삼성물산이 각각 10.44%, 19.34% 들고 있다.
문제는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야 하며 총자산 대비 3%를 초과하는 지분은 매각해야 한다.
LS증권 분석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시가 평가액은 약 27조 원 수준으로 총자산 대비 3% 한도를 훨씬 초과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약 19조 원어치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을 통해 확보한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을 매각, 자금을 확보하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생명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올해 3월 삼성생명은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당시 보험업법상 지분율 초과에 따른 의무 조치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 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이 역시 비슷한 작업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등 금융 계열사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던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의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과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게 되면 금융과 비금융 계열을 분리한 이중 지배구조가 완성되면서 지배구조도 한층 명확해진다. 다만 금융지주사 전환만으로 금산분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게 아닌 만큼 실현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2016년 삼성그룹이 본격적으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했을 때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를 통과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그룹 안팎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중간금융지주회사법 통과 가능성까지 고려한 결정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은 현실화 가능성이 낮지만 법이 통과됐을 때 금융지주사 요건 충족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리 준비에 나섰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금융지주사가 되려면 계열 상장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삼성화재 지분을 적어도 13% 정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셈인데 이날 종가를 기준으로 하면 2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올해 초 삼성화재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을 추진하면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이 15%를 넘을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을 팔거나 자회사로 편입했어야 했는데 자회사 편입을 선택했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자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을 15%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삼성생명 주가는 종가 기준으로 20일 8만8200원에서 이날 9만2000원으로 4.3% 상승했다. 22일에는 장중 9만75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는 2월20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21일 오후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을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가 시장에 돌았고 22일 오전 관련 공시가 나왔다.
삼성생명 주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과 관련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넘기는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확보, 배당 여력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번지면서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배승 LS증권 연구원은 이날 낸 삼성생명 투자 리포트에서 "전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에스피홀딩스를 설립하는 방식의 인적분할 방안을 발표했다"며 "이에 삼성그룹 내 지배구조 재편 가능성이 재부각되며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의 주가가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선 이후 삼성전자 지분매각 이슈가 재점화 될 수 있으며 현재 평가손익의 배분 비중을 고려하면 절반 정도가 배당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만 향후 법 개정 진행 추이를 살펴봐야 하고 그룹 지배구조 개편 전반의 이슈와 맞물려 진행될 것이기에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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