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생명보험업계 2위 다툼은 신용등급평가 보고서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는 사안이다. 두 회사는 경쟁하면서도 나름의 길을 걸으며 업계 2위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등 영향으로 두 회사의 위상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딜사이트는 닮은 듯 다른 두 생보사의 전략과 실적, 경영체제, 경영승계 과제 등을 통해 '2위의 자격'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2023년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생명보험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2위 경쟁' 중인 한화생명과 교보생명도 예외는 아니다.
판이 바뀌면 승부의 흐름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동안 한화생명은 외형 성장에 우선순위를 뒀고, 교보생명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IFRS17 도입 뒤에도 이러한 전략 차이는 여전하다. 방향이 다른 두 회사의 행보가 생명보험업계 2위 경쟁에도 변화를 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된다.
23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지난해 순이익 7205억원을 기록했다. 교보생명의 작년 순이익 6987억원보다 218억원 많다. 한화생명이 교보생명을 제치고 생명보험업계 2위 자리를 차지한 건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생명보험업계 순위의 경우 삼성생명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이 2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구도다. 삼성생명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4869억원으로 집계됐다. 2위 다툼 중인 한화생명, 교보생명과 격차가 상당하다.
순이익 순위 변동은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업계 2위 경쟁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몸집 키우기에 주력하는 한화생명과 달리 교보생명은 내실 중심의 성장 전략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에 순이익 만큼은 교보생명이 한화생명을 줄곧 앞서왔다.
최근 10년을 기준으로 한화생명이 순이익 부문에서 교보생명을 앞선 것은 2021년과 2024년 단 두 번뿐이다. 대체로 교보생명이 한화생명보다 많은 순이익을 기록했. 두 보험사의 순이익 격차는 한때 4000억원 넘게 벌어지기도 했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상반된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만큼 기준에 따라 2~3위도 달라진다. 대체로 자산총계나 수입보험료 등 외형과 관련된 지표에서는 한화생명이, 순이익이나 자본건전성 등 측면에서는 교보생명이 앞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형은 한화생명, 내실은 교보생명'이라는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순이익 순위가 바뀐 데 더해 자산총계에서 교보생명이 한화생명을 앞질렀다. 2022년 말까지만 해도 한화생명이 우위였지만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계 2위는 교보생명이 차지했다.
여기다 IFRS17 도입으로 CSM(보험계약마진)이 수익성과 미래 이익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떠오르면서 두 회사의 시장 위상과 평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CSM의 규모만큼이나 계약의 품질 관리 등도 중요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이 점에서도 두 회사는 대비된다.
CSM은 보험사 회계기준이 IFRS17로 바뀌면서 새로 도입된 계정과목이다. 보험사는 계약시점에서 CSM을 부채로 인식한 뒤 계약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상각해 이익으로 인식한다. 이 때문에 CSM은 클수록 좋지만 이익으로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유지율, 손해율 등 관리도 중요하다.
당장 CSM 규모만 놓고 보면 한화생명이 교보생명을 크게 앞서고 있다. 한화생명이 GA(법인보험대리점) 채널을 중심으로 공격적 영업을 펼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생명의 CSM 잔액은 9조1091억원으로 교보생명(6조4381억원)과 3조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교보생명은 GA 채널의 영향력이 꾸준히 커지는 가운데서도 전속설계사 중심의 영업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전속설계사 중심 영업은 GA 채널 대비 빠른 판매 확대에는 불리하지만 계약 유지, 불완전판매 방지 등 측면에서는 강점을 지닌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계는 한화생명 122조1350억원, 교보생명 122조4089억원으로 집계됐다. 수입보험료는 한화생명 18조2867억원, 교보생명 14조5488억원으로 나타났다.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비율)은 두 회사 모두 경과조치 전 기준 160%대를 기록했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2위 경쟁은 신용등급평가 보고서에서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사안이다. 한국기업평가는 두 회사의 보고서 모두에 '업계 2위권의 시장지위'라는 문구를 넣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3월 내놓은 한화생명 보고서에서 "2024년말 CSM 잔액 기준 업계 2위로 보유보험계약, 인지도, 판매채널 및 상품개발능력 측면에서 경쟁우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공개한 교보생명 보고서에서 한국기업평가는 "삼성생명에 이어 총자산 기준 2위 생보사"라며 "매우 우수한 시장지위 및 브랜드 인지도, 대규모 보유 보험계약 기반의 안정적인 보험료수입 전망은 신용도에 보완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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