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결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초격차'를 자랑하던 반도체 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회장이 등기이사 복귀, 그룹 컨트롤 타워 재건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이 이 회장에 대한 상고를 결정한 만큼 사법 리스크는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삼성전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책임 경영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날 오전에 열린 이사회 안건에는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재판에 대한 대법원 상고를 결정한 만큼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상고심 이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삼성전자 위기론'이 불거지며 이 회장이 오너로서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초격차'를 자랑했던 반도체 시장 경쟁에서 다른 경쟁사에 뒤처지며 힘을 못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오너로서 책임지고 기술 투자,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사안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종합금융집단 씨티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이며 삼성전자는 그 뒤를 이은 38%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HBM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에 현재 12단 HBM3E를 공급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발열 이슈 등의 문제로 여전히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파운드리에서는 점유율 63%를 차지하는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사내이사로 반도체부문(DS) 송재혁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외이사로는 반도체 전문가인 이혁재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를 임명했다. 위기 돌파를 위해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반도체 전문성을 제고하겠다는 포석이다.
이처럼 삼성전자도 현 상황을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 회장도 '책임 경영'으로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회장도 항고심 이후 공식 행보에 나서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회동하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는 한편 유럽 최대 종합 반도체 연구소인 아이멕(imec)과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회장이 본인의 사법 리스크와 삼성전자 위기 상황을 별개로 인식하고 그룹 경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검찰이 상고했지만 2심까지 무죄를 받은 상황에서 등기이사로 복귀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삼성전자가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리더로서 투자자들이 좀 더 불확실성에 벗어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복귀와 함께 그룹 컨트롤 타워 재건 논의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한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계열사 내 시너지를 끌어내는 동시에 이 회장의 결정을 뒷받침해 줄 기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 2017년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 이후 ▲사업지원TF ▲금융경쟁력TF ▲EPC TF 등 총 3개의 '미니 컨트롤 타워'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 등에 그룹 차원에서 대응하는 등 이 회장의 경영을 적극 지원할 기구가 없는 상황이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지난해 '삼성준감위 2023 연례보고서'를 통해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 재건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되고 등기이사 복귀도 무산된 만큼 컨트롤 타워 재건 논의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그룹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원장은 18일 준감위 정례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준감위 내부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할 정도로 여러 관점에서 평가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삼성을 이끌어 갈 컨트롤 타워 재건 필요성에 동감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이 거대한 기업인 만큼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인 경영을 하려면 핵심 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상당수가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과거 미전실이 사법 리스크로 해체한 전력이 있는 만큼 재건했을 때 정치권 등에 의해 공격 당할 여지가 있다. 이에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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