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LG전자가 가전 구독 서비스의 품목과 유통망을 확대하며 시장 지배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1등 가전'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삼성전자의 뒤늦은 시장 진입에 맞서 선두 자리를 굳히고 격차를 유지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아직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삼성전자에 비해 노하우가 많아 구독 품목수나 케어 서비스, 구독계약기간이나 케어기간도 훨씬 더 좋다는 평가가 많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 5일 가전 구독 품목에 전자 광고판인 사이니지를 추가했다. 이는 기업간거래(B2B) 고객을 겨냥한 것으로, 새로 등록된 전자칠판은 55~86형 등 7종이다. 회사가 가전 구독에 전자칠판 등 사이니지를 포함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자칠판은 에듀테크 분야에서 떠오르는 제품이다. 교육과 기술을 결합해 학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강점에서다. 관련 시장도 가파른 성장세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2030년 486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LG전자는 지난달 자사 전자칠판에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콘텐츠 플랫폼을 탑재하는 등 교육업계를 상대로 판매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에 가전 구독에 전자칠판을 추가한 것도 에듀테크 시장 확대와 기업 고객 확보를 고려한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가전 구독의 유통 채널 다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롯데백화점과 홈플러스, 전자랜드, 이마트 등 외부 백화점과 대형 마트로 구독 서비스를 확대했다. 지금까지는 자사 온라인 몰인 LGE닷컴과 오프라인 매장인 베스트샵을 중심으로 운영해왔다.
이 같은 LG전자의 행보는 최근 삼성전자의 가전 구독 시장 진출을 의식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LG전자와 유사한 콘셉트의 '인공지능(AI) 구독클럽'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품목 다양성이나 유통망에서 LG전자에 뒤처진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LG전자와의 차별화를 위해 AI를 앞세웠다. 전체 구독 서비스 제품 가운데 90% 이상을 AI 제품으로 구성해, 'AI=삼성'이라는 공식을 완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후발주자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만 이미 15년 이상의 가전 구독 서비스 운영 노하우를 갖춘 LG전자에 비해 삼성전자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기존에 형성된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달 기준 LG전자의 가전 구독 품목 수는 300개에 달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200여개 수준으로 알려졌다. 접근성 측면에서도 LG전자가 우위에 있다. 삼성전자는 구독 서비스를 온라인몰인 삼성닷컴과 오프라인 매장인 삼성스토어 두 곳에서만 제공 중이다.
가전 구독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케어 부문에서도 LG전자가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전자는 지난 2021년 구독 제품의 케어 전문성과 방문 시스템을 전담할 하이케어솔루션을 설립해 자회사로 두고 있다. 케어 전문가는 현재 4500명에 이른다.
반면 삼성전자는 구독 케어 서비스를 기존에 가전 제품 수리 서비스 등을 주로 담당하던 삼성전자서비스에 맡겼다. 이에 업계에서는 LG전자와 비교해 케어 전문 인력 규모나 서비스 체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전 구독 사업의 성패는 케어 서비스의 질"이라며 "연말·연초 성수기에는 애프터 서비스(A/S) 수요가 급증할 텐데, 이미 시장에 먼저 진입한 LG전자와 비교해 삼성전자는 관련 인력 부족으로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우선 가전 구독 서비스와 관련한 상담 인력 모집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현재 파견·도급업체 등을 통해 AI 구독클럽에 대한 계약 상담과 요금 납부, 변경·해지 등의 고객 문의를 처리할 전담 인력을 충원 중이다.
구독 계약 기간에서도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더 유연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LG전자는 구독 계약 기간을 3~6년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일부 제품은 최대 7년까지 가능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3년과 5년 두 가지 옵션만 제공해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구독 케어 기간도 LG전자가 더 폭넓다. LG전자는 6~24개월까지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6~12개월로 제한적이다.
LG전자는 삼성전자의 가전 구독 시장 진출을 두고 관련 시장 확대라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가전 구독 사업에서 1조원을 돌파한 데다, 15년간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장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셈이다.
또한 LG전자는 제로섬 형태의 경쟁을 넘어 해외 시장으로의 사업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대만과 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구독 사업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현재 인도에서는 구독 서비스 진출을 위한 사업성 검토를 진행 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자칠판은 이달 5일 B2B 고객 대상으로 구독 판매를 시작했다"며 "구독 제품은 앞으로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품목과 케어 서비스의 전문성이란 차별점을 앞세워 가전 구독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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