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국제 무역질서 변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내년 국내 경제에 대한 전망은 어두워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둔화, 중국 경기둔화, 내수 부진이 악재로 작용해온 상황에서 최근 터진 비상 계엄령 선포 사태는 경제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킨 상황이다. 자본시장 전문매체 딜사이트는 산업·수출·금융시장 분야를 중심으로 내년 경제 방향성을 전망하고 방안을 살펴봤다.
딜사이트는 1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6층 스튜디오에서 '트럼프 시대, 경영 환경 변화와 우리의 대응 전략'을 주제로 한 '2025 경제전망 포럼'을 개최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외교 전략을 비롯해 국내 대표 산업들의 대처 방안, 금융시장 자금흐름 전망 등을 알아보고 논의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승호 딜사이트미디어그룹 이사회 의장은 개회사에서 "비상 계엄령 선포사태로 가뜩이나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던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며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 등으로 국제 무역질서에 변화 가능성이 커지며 국내외 경제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다"며 서두를 열었다.
이 의장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하는 경제정책들이 한국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어 내년 시장 변수들을 미리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며 "이번 포럼이 대외 경영환경 변화를 예측해 보고 내년도 사업계획과 투자전략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정민 법무법인 지평 경영컨설팅센터 BI그룹장,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김영일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연사로 나섰다. 정민 그룹장은 '트럼프 2.0 시대, 수출 환경 변화와 한국 경제의 영향', 경희권 연구위원은 '한국 산업(반도체&배터리) 위기인가, 기회인가?', 김영일 센터장은 '금융시장 자금흐름 전망'을 주제로 향후 방향성을 제시하고 참석자들과 의견을 공유했다.
◆트럼프 2기, 韓경제 부담 불가피하지만 기회요인도 상존…협상력 높이는 선제 방안 마련해야
첫 연사로 나선 정민 그룹장은 "트럼프 2.0 시대는 우리에게 위협일 수 있다"면서도 "기회 요인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 통상의 틀을 뛰어넘는 현안 연결과 협상카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재당선으로 관세 인상과 미·중 2차 무역전쟁 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보호무역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정 그룹장은 "트럼프 1기에 미·중 무역 분쟁으로 글로벌 교역량과 산업 생산의 위축을 경험했다"며 "공고해진 미국 우선주의와 강력해진 보호무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 2기 시대의 세계 경제는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의 경우 통화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 그룹장은 "미국이 중국 외에 다른 여타 국가들까지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보복 관세를 하거나 자국 통화 가치절하를 통해 방어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런 통상 환경 자체는 관세 전쟁에 더해 환율 전쟁까지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율 전쟁은 특히 국내 경제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미국의 통상 압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 그룹장은 "한국경제 성장률과 수출 증가율은 트럼프 재임기간 연평균 -0.32%포인트, -1.68%포인트 하락 압력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업권별로는 ▲자동차 ▲반도체 ▲이차전지 ▲철강 4개 분야를 비우호적 사업환경을 맞이하게 될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았다.
다만 정 그룹장은 기회 요인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봤다. 그는 "세계화가 종료된 후 글로벌 공급망 투자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국의 빈자리를 한국이 대체하며 반사이익을 얻었었다"며 이를 위해서는 선제적인 협상카드 마련과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 펀드멘탈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필요한 니즈 파악이나 무역적자 축소 방안 같은 것들을 다른 산업과 연계시켜 미리 협상력을 높일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들이 기존의 예측치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펀더멘탈을 강화하는 조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배터리 산업, 세액공제 적극 고려해야…中 치킨게임 차단 긍정효과도
국내 반도체·배터리 산업과 관련해서는 세액공제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향후 수출 과정에서 국내기업들이 관세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경 연구위원은 이날 포럼에서 "제조업 전반의 유출이 우려된다"며 "관련 솔루션과 세액공제 혜택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 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2기 내각 구성원들이 1기 때와 달리 끈끈한 학연과 지연으로 엮여있는 것 같다"며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다양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만 60% 관세를, 그 외 국가에는 10%가량의 관세를 매긴다면 수출 우회나 종합적인 국가 간 통상교섭 전략의 필요성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미국을 우회 수출기지로 반도체 등 고급 중간재를 베트남에 공급해왔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입지 약화와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회 수출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강 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중국의 치킨게임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당선의 긍정적인 요소도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경 연구위원은 "현재 중국의 반도체 벤처 투자액은 미국의 투자 규모를 지난 2년 만에 완전히 뛰어넘었다"며 "우리나라처럼 반도체 주요국 입장에서는 향후 중국의 치킨게임으로 인한 위기보다 차라리 트럼프 위기가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주식·채권 자금흐름 美 쏠림 현상 전망…원자재·금 수요 증대 관측도
김 센터장은 향후 금융시장 자금흐름과 관련해 미국 주식 및 채권을 주목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기업 중심'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의 선호가 높아질 것이란 설명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으로 원자재 및 금 수요도 늘어날 것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주식은 2025년 가장 양호한 성과가 기대되는 자산군으로 꼽힌다. 미국 채권에 대한 매력도 역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다. 김 센터장은 "글로벌 고령화, 미국 제외 국가의 경기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인해 관련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양호한 성과가 기대되는 통화 역시 달러가 지목됐다. 김 센터장은 "트럼프 당선으로 탈(脫)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 명목 성장 확대 구간이 지속돼 달러 자산 수요 역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개선되면 달러 자산 쏠림 현상은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김 센터장은 "원자재와 금에 대한 기대감 역시 올라오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측면이 이에 대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 투자 선호 현상이 짙어도 가격 추이가 무한정 올라 간다면 미국으로 쏠리는 자금 흐름이 둔화될 우려는 존재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트럼프 정부가 미국 중심 주의와 관련한 규제를 소폭 완화한다면 가상자산이나 부동산, 사모펀드 등으로 투자 심리가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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