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도이치오토모빌그룹 오너 2세인 권혁민 도이치모터스 대표이사가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다. 입사 5년 만에 대표 자리를 꿰찬 그는 이번에 부회장 타이틀까지 따 내며 그룹 내 무게감을 한층 높였다.
다만 핵심 계열사이자 유일한 상장사인 도이치모터스의 실적 부진 속 이뤄진 승진이라는 점에서 당위성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를 두고 부친 권오수 전 도이치오토모빌그룹 회장의 사법리스크를 덮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레 나온다.
◆ 권오수 전 회장 장남, 입사 8년 만에 그룹사 부회장
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도이치오토모빌그룹은 지난달 28일 권 부회장을 그룹사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그룹은 권 부회장이 도이치모터스 대표 취임 이후 딜러십 서비스를 비롯해 중고차, 모빌리티, 파이낸셜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이끈 공로를 승진 근거로 삼았다. 특히 도이치모터스는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조직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1986년생인 권 부회장은 올해로 38세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2011년 삼성물산에 입사, 약 5년간 근무했다. 권 부회장이 도이치오토모빌그룹에 입사한 것은 2016년이다. 도이치모터스 전략기획실 소속으로 합류한 그는 2017년 말 상무로 승진했으며, 2018년과 2020년 말 임원인사를 통해 전무와 부사장에 차례로 올랐다. 특히 2021년 3월 사내이사 선임으로 이사회 일원이 됐으며, 그해 11월에는 대표로 영전했다.
권 부회장은 권 전 회장 외아들이면서 오너일가 중 권 전 회장에 이은 개인 2대주주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후계자로 꼽혀 왔다. 이 회사는 권 전 회장이 지분율 29.5%의 최대주주이며, 권 부회장이 5.4%를 들고 있다. 권 부회장 여동생인 권민아 씨의 경우 차란차와 브리티시오토의 사내이사 및 감사 등으로 등재돼 있지만, 승계 구도에서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 '핵심' 도이치모터스, 비용관리 실패 수익성 ↓…신사업 성과 '미비'
도이치오토모빌그룹은 권 부회장이 실무자와 경영자로서 능력을 입증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정량지표는 사측 주장을 빗겨나가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실적이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어서다.
실제로 도이치모터스는 올 들어 3분기까지 연결기준 매출 1조5533억원과 영업이익 14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매출은 3.9%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5% 가량 위축됐다. 특히 순손익의 경우 73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간 매출원가율은 90.8%로 전년 동기(91.1%)보다 소폭 줄었음에도, 판매비와관리비 등 비용 통제에 애를 먹은 영향이다. 여기에 더해 영업외수익으로 번 돈보다 영업외비용으로 쓴 돈이 더 많았던 탓에 순손실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권 부회장이 주도하는 신규 사업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영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반면 도이치오토모빌그룹은 권 부회장이 기존 ▲BMW ▲MINI ▲포르쉐▲재규어랜드로버 뿐 아니라 ▲아우디 ▲람보르기니 ▲애스턴마틴 ▲BYD 딜러십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는 점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아우디 딜러사인 바이에른오토는 올 3분기 말 순손실이 전년 동기 대비 2.2배 늘어난 65억원이었으며, 람보르기니와 애스턴마틴 딜러사인 이탈리아오토모빌리와 브리타니아오토는 각각 15억원, 9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 초반인 신규 수입차 딜러사업이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만큼 경영 성과로 삼기엔 힘든 수준이다.
권 부회장이 신사업 발굴을 위해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인 차란차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친환경차 산업을 겨냥한 태스크포스(TF) 'DT 이노베이션'을 신규 설립했다는 점도 있다. 아울러 작년 말 인수한 캄보디아 소재의 여신 전문 기업 'BAMC FINANCE PLC.'를 활용한 동남아시아 금융 시장 개척 기대감이 승진에 반영됐다. 하지만 해당 사업들 모두 유의미한 성과를 쌓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주도하는 신사업이 아직까지 저조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본궤도 진입을 위한 계획된 손실인지, 수입차 시장 성장 둔화에 따른 판매 부진 탓인지 속단하기 힘들다"며 "통상 성과에 따른 신상필벌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권 부회장과 같이 뚜렷한 성과 도출 전 초고속 승진을 한다면 오너일가라는 이유가 크게 반영됐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권 회장 주가조작 논란…경영공백 채우고 존재감 강조
권 부회장이 불과 30대 후반의 나이에 그룹 경영 전권을 손에 쥐게 된 배경에는 부친의 사법 리스크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권 전 회장은 2020년 불거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논란에 연루됐고, 이듬해 11월16일 구속기소되면서 등기임원직에서 내려왔다. 도이치모터스는 바로 다음날인 11월17일 권 대표를 대표 자리에 앉히며 경영공백 최소화에 나섰다.
권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2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권 전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올해 9월 2심 재판에서도 유죄가 인정되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형을 받았다. 권 전 회장 측이 이 같은 판결에 불복해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하면서 소송은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이에 권 부회장에게 그룹 1인자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오너가 권위를 높이려 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도이치오토모빌그룹 측은 권 부회장의 승진 배경에 대해 "권 전 회장 사법리스크나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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