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호정 부국장] 서킷시티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전자제품 유통시장을 호령하던 기업이다. 5S(Service, Selection, Savings, Speed, Satisfaction) 경영철학을 앞세워 한때 베스트바이를 밀어내고 1위 사업자로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서킷시티는 2009년 3월 최종 도산하며 추억의 이름이 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경기 악화로 제품 판매가 급감한 것도 요인이었지만 그보다 적극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과거 답습형 관리 체제가 문제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난데없이 15년 전 망한 기업을 소환한 이유는 OCI가 지난달 31일 진행한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컨콜) 때문이다. 이날 이 회사 이수미 전무는 판매단가 하락과 해상운임을 포함한 원가 상승으로 올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8% 증가한 5887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19.5% 감소한 177억원을 거뒀다고 브리핑 했다. 이후 신사업 확대 및 매출다각화, 생산효율화, 비용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기까지는 여느 기업의 컨콜과 다르지 않았기에 글로벌 경기침체를 타파할 OCI의 구체적 사업계획을 묻는 질문이 나오길 바라며 기다렸다. 하지만 질의응답 시간은 침묵으로 지나갔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컨콜은 종료됐다. 이 순간 서킷시티의 망령과 OCI 컨콜의 낯선 침묵이 묘하게 오버랩 돼 보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애널리스트는 직업상 자신이 담당하는 산업과 기업의 종사자들과 교류하며 해당 산업과 기업의 상황을 가장 빨리, 그리고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지위에 있다. 그들의 고객은 일반투자자가 아닌 대규모 거래를 담당하는 펀드매니저다. 펀드매니저는 일일이 기업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시간이 없기에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참고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OCI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궁금증이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나쁜 신호다. OCI가 영위하는 사업영역 중 기대감을 가질 만한 게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 까닭이다.
물론 OCI 입장에서는 이러한 지적이 야속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지배구조 재편으로 OCI홀딩스(모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됐고, 모회사가 사업의 모든 키를 들고 있어 자사(OCI)에 대한 질문의 필요성이 없었진 결과인데 굳이 망한 기업과 도매급으로 엮는 게 억울할 법 하다. 게다가 OCI홀딩스 컨콜에 이우현 회장이 등판했던 만큼 자사(OCI) 질문까지 모회사(OCI홀딩스)에 몰릴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해명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OCI 컨콜의 낯선 침묵을 지적하는 이유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서 너무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판단해서다. 6월말 기준 이 회사의 소액주주는 4만9513명이고, 이들은 전체 주식의 46.89%(348만7232주)를 보유 중이다. 10월 31일 기준, 지난해 주당 10만4200원이던 이 회사의 주가는 올해 7만2300원으로 30.6%나 하락했다. OCI가 주주들과 밸류업에 대해 관심을 가졌더라면 주기적으로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증권사 8곳에 질문을 부탁하는 꼼수라도 쓰지 않았을까.
기업의 컨콜은 실적 정보 전달을 넘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회사의 향후 사업계획. 속해 있는 섹터의 비전 등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자리다. 더불어 책임감 있고 의미 있는 정보를 주주에게 전달하는 것은 상장기업의 책무다. OCI가 밸류업을 원한다면 컨콜을 단순 실적 발표의 장이 아닌 주주와 소통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